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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말저런글] 엄빠, 그리고 이분법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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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엄마가 더 좋니, 아빠가 더 좋니, 하고 한 어른이 묻습니다. 어릴 적이었지만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는 반문이 마음속에서 일곤 했습니다. 종종 속으로 혀도 찼습니다. 참으며 답하긴 했지만요. 엄마 하면 아빠가 서운해할 테고 아빠 하면 엄마가 서운해할 테니 "엄마도 좋고 아빠도 좋아요"라고 말입니다. 대개 엄마, 아빠가 곁에 있을 때 받던 질문이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금버금(서로 엇비슷하여 정도나 수준에 큰 차이가 없다)한 둘 중에서 하나만을 고르라는 양자택일(兩者擇一) 주문이 폭력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예시한 '엄빠' 사례야 애교이고 재미이겠지만요. 복잡한 현실(現實)을 단선적 이상(理想)으로 일도양단(一刀兩斷)하는 이분법을 통탄하는 것은 양자택일의 폭력성을 저어하는 생각의 연장선입니다. 게다가 둘로 나누는 칼날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곳을 관통하거나, 엉뚱한 데를 동강 낸 경우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한 일화를 옮깁니다. 시사하는 바가 있어서입니다. 조연 전문 영화배우 ○○○이 작품에 자주 출연할 때 생긴 우스개입니다. 이 땅의 모든 영화는 ○○○이 출연한 영화와 출연하지 않은 영화로 나뉜다는 겁니다. 진릿값이 참인 나눔이지만 그뿐입니다. 거의 설명해주는 것이 없습니다. 가치 없는 구별입니다. 의미 없는 구분입니다. 칼날이 한쪽으로 치우쳐, 그것도 극단으로 치우쳐 관통한 예입니다.

6.25 전쟁 또는 한국전쟁이 남침으로 일어났냐, 북침으로 일어났냐 합니다. 언제까지 이럴 겁니까. 북한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남침하여 전면전이 시작된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이 끝난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게까지 남침이냐 북침이냐, 국회에서 답하라고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망발에 기대어 개입, 불개입을 거론하며 이분하는 행태는 또, 언제까지 인내해야 할까요. 칼날이 엉뚱한 데를 동강 낸 예들입니다.

둘로 나누어 풀면 어떤 사태나 사안, 사건을 이해하기 좋습니다. 그러나 지켜야 할 선은 있습니다. 적당해야 합니다. 정부의 외교정책 기조를 두고 자주외교냐 동맹외교냐 하는 말들을 합니다. 자주파냐 동맹파냐 하는 말도 하고요. 엄마가 더 좋으냐, 아빠가 더 좋으냐 하는 물음을 이 나이에 다시 받아야 하는지 난감할 뿐입니다. 지정학의 땅에 사는 대한국민 모두에게 외교는 명줄입니다. 전부 자동파(자주동맹파)이자 실사구시파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2. 네이버 고려대한국어대사전
3. 유튜브 광주MBC 채널 동영상, 시대를 통찰한 김대중 대통령 특별강연 Kim Dae jung speech(2006년), 9분 47초 이후 분량 참조 - https://www.youtube.com/watch?v=GBXXJYEJHJs&t=1952s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