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가 맷돌의 손잡이로 이해되었습니다. 어처구니없다 하는 말의 유래 해설에 한동안 그렇게 활용되었지요. 맷돌을 돌리려고 하는데 손잡이가 없으니 얼마나 어이(어처구니의 다른 말)없는 상황이겠습니까. 설득력 있게 들려서 아∼ 그렇구나, 많이들 수긍했습니다. 영화 <베테랑>에서 극중 인물이 같은 취지로 어원을 밝힌 바도 있지요. 맷돌손잡이론이 더욱 그럴듯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럴 때 어이없다고 하는 것일까요. 맷돌손잡이론은 재미로 부푼 설에 불과했습니다. 맷돌손잡이는 [맷손]임을 알았으니까요. 어처구니, 니가 왜 거기서 나왔을까 여전히 궁금합니다. 설이 급속히 확산했을 즈음, 처음부터 진실을 알았던 이들이 어이없어했을 모습을 상상하면 쓴웃음이 나옵니다.
사전은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을 이르는 말로 어처구니를 설명합니다. 줄여서 어이라고 하고 특정 지역에서는 얼척이라고도 합니다. [허 부령은 큰사랑 아래쪽에 가 안석을 의지하고 거만히 앉아서 흰 떡가래 같은 여송연을 어처구니 굴뚝에 연기 나오듯이 피우고 앉았다가…. ≪이상협, 재봉춘≫]라는 예문이 보입니다. 엄청나게 큰 굴뚝 연기에 비유한 것을 보면 여송연 연기가 상당했나 보네요.
『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장인용 저)는 광산에서 돌을 부수는 기계, 증기기관 같은 물건에도 어처구니를 썼다고 전합니다. 또 왕궁이나 절의 추녀마루 위에 있는 잡상(雜像. 궁전이나 전각의 지붕 위 네 귀에 여러 가지 신상(神像)을 새겨 얹는 장식 기와)을 어처구니라 부르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적어뒀습니다.
사전풀이를 넣어서 어처구니없다를 옮기면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이 없다]입니다. 어이없는 말이 됩니다. 어떻게 이것이 '뜻밖이거나 한심해서 기가 막힘을 이르는' 말로 쓰일까요? 『도사리와 말모이, 우리말의 모든 것』의 지은이 장승욱의 견해를 따릅니다. "일이 너무 엄청나거나 뜻밖의 일을 당해 기가 막힐 때 '어처구니없다'고 말하는 것은 눈앞의 현실을 믿을 수도 없고 믿기도 싫어서 그렇게 말하는 반어(反語)의 한 가지일 것이다."
다이어트한다는 형이 음식점에서 공깃밥을 하나 더 시켜 먹으면 동생이 그럽니다. "다이어트 잘도 되겠네, 잘도 되겠어." 한턱 크게 내겠다는 친구가 중국집에서 "나는 짜장" 하면 혼잣말로 나는 구시렁댑니다. "크게도 쏜다. 쏴." 내일이 시험인데 게임만 하는 아들을 보고 부모는 말합니다. "잘하는 짓이다. 잘하는 짓이야." 어처구니를 눈앞에 두고 어처구니없다고 하는 것과 유사한 말법입니다. "반대로 표현하는" 반어 말입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장승욱, 『도사리와 말모이, 우리말의 모든 것』, 도서출판 하늘연못, 2010, p. 431. '어처구니와 시치미' 글에서 부분 인용 (본문에서 큰따옴표로 인용)
2. 장인용, 『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 그래도봄, 2025, p. 88. 어처구니의 다른 말과 쓰임새 설명 인용
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