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진출 한국 기업 '최악' 피했지만 스마트폰 등 IT품목 불확실성 여전
8일 데드라인 앞 각국 '협상 성적표' 교차할 듯…한 '늦은 출발' 속 협상 가속 주력
한국, 기존 대미관세 없어 불리한 출발에 '계엄공백'까지…차·철강 관세 조정이 관건
(세종·서울=연합뉴스) 차대운 이슬기 한지은 기자 = 미국이 예고한 '상호관세' 유예 시한이 오는 8일로 바짝 다가온 상황에서 베트남이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아시아국 첫 번째로 미국과 무역 합의를 이뤄내 예고된 상호관세를 일정 부분 낮추는 데 성공했다.
베트남은 한국 기업이 활발하게 진출한 수출·제조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합의로 앞서 예고된 46%의 상호관세 부과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게 돼 한국 기업들이 부담을 어느 정도는 덜게 됐다.
그렇지만 이번 무역 합의 타결을 계기로 협상 데드라인을 전후로 각국이 서로 다른 '협상 성적표'를 받아들 전망이다. 본격 협상 시작이 늦었던 한국이 협상에 뒤처져 크게 불리한 여건에 처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 베트남 고관세 우려했던 기업들 일단 안도…"스마트폰 관세까지 봐야"
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표 등에 따르면 미국과 베트남은 베트남이 대미 관세를 0%로 낮춰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은 45%로 예고했던 상호관세를 20%로 낮춰 시행하는 것을 골자로 한 무역 합의를 이뤘다.
베트남은 현재 대부분 미국 상품에 15% 또는 그 이하의 관세를 부과 중인데 대미 관세를 사실상 철폐했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진다.
베트남은 중국을 대체한 새로운 해외 전략 제조·수출 기지 역할을 해왔다. 이에 베트남과 미국의 무역 합의 타결은 한국 기업에 일정한 안도감을 준다.
지난해 베트남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한국의 3대 교역국이었다.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외국인 직접 투자국이기도 하다.
양국 무역은 한국이 베트남에 투자한 후 현지 공장에 필요한 중간재를 수출하고, 베트남은 완성된 최종재를 세계에 수출하는 식의 구조로 돼 있어 상호 경제 의존성이 커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작년 삼성전자가 베트남에서 생산해 미국 등지로 수출한 스마트폰·가전 등 제품 규모만 544억달러(약 80조원)에 달해 베트남 전체 수출의 약 14%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미국과 베트남이 이번 무역 합의는 국가별 맞춤형 관세인 상호관세만 대상이고, 품목별 관세를 포함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부과 중인 자동차(25%), 철강·알루미늄(50%) 품목 관세처럼 향후 반도체와 더불어 스마트폰 등 IT 제품군에까지 별도의 품목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따라서 이번 합의에도 한국 기업에 가장 중요한 IT 품목의 경우 불확실성이 완전히 걷어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베트남 진출 IT 기업 관계자는 "많은 대비를 하고 있지만 베트남을 완전히 배제하는 건 어려운 결정이었기에 이번 무역 합의는 상당히 긍정적"이라면서도 "IT 반도체군 품목 관세 불확실성이 있어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 '협상 레이스'서 낙오하면 충격…경쟁국 일본 먼저 나가면 '충격'
베트남의 무역 합의 달성이 한국에 일정한 안도감을 주지만 전체적인 대미 협상의 각도에서 바라보면 압박 요인이 되기도 한다.
베트남과 무역 합의는 미국 정부가 실질적으로 '현상 변경'을 원하는 핵심 무역 적자국과의 첫 합의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지난달 미국이 영국과 첫 무역 합의를 이뤘지만 영국은 미국의 입장에서 무역 흑자를 보는 국가라서 협상 쟁점이 크지 않았다. 사실상 '번외 게임'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따라서 대미 관세 철폐, 미국 상품 구매 확대를 골자로 한 '베트남 모델'을 기반으로 미국이 호관세 유예 시한까지 여러 국가와 무역 협상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최악인 시나리오는 베트남에 이어 한국과 처지가 비슷했던 일본 등 주요국이 무역 합의를 이뤄 빠져나간 뒤 협상장에 남아 주요 경쟁국보다 무거운 관세를 부과받는 상황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모든 나라들이 함께 미국의 관세 압박을 받는 상황이었지만 서로 상황이 처지가 달라지게 되면 국민과 기업들이 받는 심리적 충격이 커질 수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에서 자동차 등 주력 제품을 놓고 치열한 경합 관계에 있는 일본이 먼저 자동차 등 품목 관세 인하를 포함한 무역 합의에 도달하고, 한국만 계속 높은 관세를 부과받는 상황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실제로 한국은 12·3 계엄, 탄핵소추, 대통령 파면으로 이어진 리더십 공백 상황으로 지난달에야 미국과의 본격적으로 관세 협상 국면에 넘어갔다.
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수시로 통화하며 관세 문제를 협의했고, 아카자와 경제재생상도 4주 연속 미국을 방문하며 협상 속도를 높여 합의 도출을 위한 막바지 진통 과정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의 경우 출발도 늦었거니와 대미 관세 협상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사실상 서로 매기는 관세가 없기 때문에 베트남이나 일본 등 국가처럼 대미 관세를 낮추는 방식으로 미국과 협상을 추진하기 어렵다.
대신 미국은 구글 정밀지도 반출 허가 등 디지털 시장 규제 완화,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규제 철폐 등 민감한 '비관세 장벽' 문제에서 우리 측의 성의를 요구하고 있어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국민들이 수용 범위에서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최선의 제안'을 마련하는 데 부담이 크다.
아울러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주된 협상 대상인 상호관세 외에도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와 철강 등 제품에 부과된 품목 관세에다 향후 부과가 예고된 반도체·IT 제품군 품목 관세까지 최소화하는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한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 정부와 협상에서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품목 관세는 기본적으로 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어 자동차, 철강 관세 최소화 목표 달성이 매우 도전적인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은 베트남과 달리 미국과의 경제·안보적 관계가 더욱 긴밀하고, 동북아 핵심 우방국이자 중국 견제에 필요한 제조업 강국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제조업 강국으로서 한국의 역할이 미국 입장에서는 절대 간단치 않고, 향후 미국이 꿈꾸는 대중 견제·첨단산업 생태계에서 한국이 꼭 필요하다"며 "한국의 강점을 협상에서 잘 어필한다면 여전히 상호관세(15%) 기본관세(10%), 품목 관세까지 인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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