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5회까지 그가 던진 공은 92개였다. 올시즌 자신의 한 경기 최다 투구수와 타이. 2-4로 뒤지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라면 더 던지게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약속된 시나리오는 반드시 이 경기에서 대기록을 마무리짓겠다는 것. 클레이튼 커쇼가 6회초 마운드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다저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5만3536명의 LA 다저스 팬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타자 하나만 삼진으로 잡으면 이날 임무를 완수한다. 첫 타자 마이크 터크맨을 1루수 땅볼로 잡은 커쇼는 마이클A 테일러에게 좌익선상 2루타를 허용했다. 다음은 오른손 비니 카프라.
투구수는 96개로 이제는 여유가 없었다. 주자를 더 내보내면 교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커쇼가 초구 90.6마일 직구를 스트라이크로 꽂는 순간 2루주자 테일러가 3루로 내달렸다. 예상치 못한 도루 시도였다. 포수 윌 스미스가 재빨리 3루로 던져 3루수 맥스 먼시가 슬라이딩해 들어오는 테일러를 태그해 아웃시켰다. 주자가 없어졌고, 아웃카운트가 2개로 늘어나 커쇼는 큰 부담을 덜었다.
그런데 먼시가 태그 후 낙하하면서 왼쪽 다리를 테일러의 헬멧에 부딪혔다. 그 자리에 쓰러진 먼시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어 경기가 중단됐다. 로버츠 감독과 트레이너가 3루로 뛰쳐나갔다. 커쇼도 스미스와 함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먼시의 상태를 바라봤다. 결국 키케 에르난데스가 3루수로 교체 출전했다. 3분여가 흐른 뒤 경기가 재개됐다.
커쇼가 잠시 힘을 비축할 수 있는 시간이었음은 분명했다. 2구 볼에 이어 3구째 84.5마일 낮은 슬라이더에 카파라의 방망이가 헛돌았다. 볼카운트 1B2S에서 커쇼는 숨을 몰아쉰 뒤 4구째 85.3마일 슬라이더를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에 꽂았다. 루킹 삼진. 이때 커쇼의 반응이 의외였다. 두 팔을 들거나 포효하지 않았다. 동료들과 관중석 분위기를 살피며 조용히 3루 더그아웃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축제가 시작됐다. 그의 아내와 4명의 자녀가 관중석에 환호하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로버츠 감독은 오른팔을 치켜들었다. 커쇼는 모자를 벗고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동료들의 축하 인사가 이어졌다. 무키 베츠와 가장 먼저 포옹했다. 키케와 미구엘 로하스가 뒤를 이었다. 이날 결장한 테오스카 에르난데스가 훈련복 차림으로 커쇼를 맞았다.
이어 프레디 프리먼과 격한 포옹을 했고, 김혜성이 6번째로 커쇼의 왼팔에 안겼다. 오른팔은 앤디 파헤스의 몫이었다. 로버츠 감독이 마지막으로 커쇼를 감싸 안으며 등을 두드렸다.
장내 아나운서의 축하 코멘트가 이어졌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간 커쇼는 나머지 선수들과 스태프와도 일일이 포옹과 악수를 나눴다. 커쇼가 다시 그라운드로 나와 팬들의 커튼콜에 응했다. 다저스의 6회말 공격이 시작될 때까지 약 5분40초 동안 진행된 역대 20번째 3000탈삼진 세리머니였다.
커쇼가 마침내 메이저리그 커리어 최종 목표인 통산 3000탈삼진에 입맞춤했다. 커쇼는 3일(이하 한국시각)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홈경기에 선발등판해 6이닝 9안타 1볼넷 4실점으로 고전하면서도 탈삼진 3개를 보태 그 고지에 깃발을 꽂았다.
쉽지 않은 경기였다. 1회에만 3루타와 우전안타를 맞고 선취점을 허용했다. 2-1로 앞선 3회에는 선두 체이스 마이드로스에 우전안타, 오스틴 슬레이터에게 풀카운트에서 87.3마일 슬라이더를 몸쪽으로 던지다 좌측 담장을 크게 넘어가는 투런포를 얻어맞고 역전을 당했다.
미구엘 바르가스를 3구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2998탈삼진에 도달한 뒤 앤드류 베닌텐디에게 우측 2루타, 에드가 케로에게 우전적시타를 허용해 2-4로 점수차는 더 벌어졌다.
4회를 무실점으로 넘긴 5회 2사후 케로에게 중전안타를 내준 뒤 레닌 소사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3000탈삼진에 한 개차로 다가섰다. 그리고 6회 마지막 타자를 삼진 처리하며 역사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커쇼는 패전의 위기에서 마운드를 내려갔지만 다저스는 9회말 경기를 그냥 끝내지 않았다. 2안타와 3볼넷을 묶어 3점을 내며 5대4로 끝내기 역전승을 거뒀다. 김혜성이 무사 1,2루서 볼넷을 골라 만루로 찬스를 연결한 것이 컸다. 프리먼이 끝내기 우전안타를 터뜨려 오타니 쇼헤이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이 경기는 2008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다저스의 프랜차이즈 스타플레이어 커쇼의 통산 441번째, 선발로는 438번째 경기였다.
커쇼는 역대 20번째이자, 좌완으로는 4번째, 한 팀에서만 활약한 투수로는 3번째로 3000탈삼진의 금자탑을 세웠다. 앞서 좌완투수 스티브 칼튼(4136개), 랜디 존슨(4875개), CC 사바시아(3093개)가 3000탈삼진을 달성했고, 워싱턴 세내터스 월터 존슨(3509개)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밥 깁슨(3117개)은 원-클럽 플레이어로 대기록을 완성했다.
현역 투수로는 저스틴 벌랜더(3471개)와 맥스 슈어저(3419개)에 이어 세 번째로 3000탈삼진 회원이 됐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