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닷컴 박아람 기자] 속리산 자락을 마주한 풍경 좋은 집. 봄부터 가을까지 꽃은 쉼 없이 피고, 풀이 잔디처럼 자라 맨발로 걷기 좋은 정원은 초록 융단 같다. 보리수, 매실, 블루베리, 딸기 등 손만 뻗으면 열매가 가득하고 밭에는 작물과 풀이 함께 자란다. 이 특별한 집의 주인은 정호진(72) 씨와 박미향(59) 씨 부부다.
신학을 가르치던 교수에서 농부로, 또 인도와 아프리카 말라위로 날아가 우물을 파며 농사를 가르치는 NGO 활동가로 살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뜻한 바 있어 5년 전 상주로 귀농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호진 씨. 비닐 대신 풀로 흙을 지키고, 넓은 밭에는 경운기를 쓰지 않고 풀 한 포기까지 아까워하며 생명 농업을 짓고 있다.
그 곁에는 23년을 함께한 봄 같은 아내 미향 씨가 있다. 남편이 땅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전할 때, 미향 씨는 농사의 결실로 풍성한 식탁을 차려낸다. 환경을 위해 다 해진 겉옷에 청테이프까지 붙여가며 입는 검소한 농부, 반면, 아내는 어딜 가도 눈에 띄는 화려한 외모다.
사실, 6년 전 미향 씨는 가슴을 뛰게 하는 꿈을 찾았다. 바로, 모델의 길이다. 상주에서 서울로, 등하굣길이 멀어지고 무거운 짐가방을 들고 다니지만 런웨이에서 미향 씨는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다.
서로 다른 듯 닮은 부부. 오늘도 '모델' 아내는 화려한 패션쇼 무대를 누비고 '농부' 남편은 흙과 풀을 살리는 삶의 철학을 일궈간다.
# 농부와 모델의 빛나는 여름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아내를 보면 농부는 봄처럼 들뜬다. 모델 아내는 올곧은 나무처럼 삶의 철학을 가진 남편이 존경스럽다. 알알이 커진 매실을 수확하는 날 호진 씨는 매실나무를 타고, 미향 씨는 그 아래에서 부지런히 매실을 줍는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지는 아들 한솔이 왔다. 아들은 "아버지 어디가 좋았어요?"라며 장난 섞인 질문을 던진다. "해맑잖아"라고 대답하는 미향 씨의 눈에는 백발이 되어도 여전히 해맑은 남편이란다.
사실, 23년 전 한 강연장에서 만나 재혼한 두 사람. 세 아이를 데리고 인도로 떠나 NGO 활동을 했고, 그 시간 속에서 '가족'이라는 이라는 이름으로 단단하게 이어졌다.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딸과 사위가 상주로 와서 가장 좋은 건, 장모님
백발 사위와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며 잘 사는 딸을 보는 내내 흐뭇해하신다. 고대하던 빗방울이 떨어지자 집은 생기를 되찾고, 농부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난다.
호진 씨가 나무에 부부의 이름을 새겨넣는다. '모델 박미향, 농부 정호진'. 나란히 새긴 명패를 대문에 내건다. 생명을 길러내는 농부, 무대 위에서 빛나는 모델은 오늘도 인생의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뜨겁고 푸르게.
tokki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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