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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준비했잖아. 왜 은퇴해?"…'감성 대신 이성으로' 남편의 한 마디, 레전드는 코트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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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이종서 기자] "냉정하게 프랜차이즈는 아니잖아."

2024~2025시즌을 마치고 황연주(39·한국도로공사)는 '은퇴'라는 단어를 현실로 마주했다.

황연주는 2023년 4월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와 2년 총액 2억2400만원에 FA 잔류 계약을 했다. 2024~2025년 시즌을 마치면서 FA 계약 기간이 끝났고, 새로운 연봉 계약을 해야했다.

세월이 야속했다. 황연주는 V리그 원년인 2005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2순위)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입단해 여자부 최초 신인상을 받았고, 여자부 1호 트리플크라운(서브·블로킹·후위 공격 3득점 이상) 기록을 가지고 있는 빅 스타 출신.

2010년 FA 자격을 얻어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로 옮긴 그는 지난 시즌까지 역대 서브 득점 1위(461득점), 득점 3위(5847득점)에 오르는 등 V리그 여자 배구 역사 곳곳에 발자취를 남겨온 '리빙 레전드'였다. 그러나 2024~2025 시즌 9경기 출전에 그치는 등 현대건설에서 기회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결국 새로운 시즌 전력 구상에서도 빠지게 됐다.

약 15년을 뛴 팀과 이별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가 일단 황연주를 향해 관심을 보였다.

은퇴를 고민하던 황연주에게 남편의 한마디가 길잡이가 됐다. 황연주의 남편은 KBL에서 '공격형 가드'로 활약한 박경상(35). 황연주보다 먼저 은퇴한 만큼, 아내의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황연주는 "처음에 현대건설에서 나오게 됐을 때 '이제 배구를 못하는구나,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이 '올해 배구를 하려고 준비하지 않았냐. 선택지가 있는데 왜 은퇴를 하려는지 모르겠다. 배구를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올해 배구를 하려고 몸을 만들었고, 필요로 하는 팀이 있는데 갈까 말까 고민하지 마라'는 말을 해줬다"고 이야기했다.

황연주는 이어 "생각해보니 맞더라. 새로운 시즌 배구를 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었고, 또 나를 필요로 하는 팀도 있었다. '할 수 있으면 하는거지'라는 생각을 했다"며 "남편도 '잠깐 힘들 수 있지만, 또 괜찮아진다. 불러주는 팀이 있고, 필요로 하면 하는 게 맞다'고 조언했고, 나 역시 연장 의지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남편의 현실적인 한 마디는 황연주에게 현실을 돌아보게 했다. 황연주는 "남편이 '현대건설에 오래 있어서 색깔은 강할 수 있지만, 프랜차이즈는 아니지 않나. 신인 때 뽑혀서 간 것도 아닌데 왜 은퇴를 현대건설에서만 해야한다고 생각하냐. 너 정도 되는 선수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은퇴하는 건 아닌 거 같다'는 말을 해줬다. 농구는 워낙 팀을 옮기는 일이 많다 보니 그런 이야기를 해준 거 같다. 그 말에 현역 연장 의지가 더 강해졌다"고 했다.

이적을 택한 황연주는 다시 한번 코트에 설 준비에 들어갔다. 황연주는 "새로운 팀에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할 수 있어서 좋다"라며 "7월부터 조금씩 운동을 시작해서 8월부터 본격적으로 팀 훈련을 소화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황연주는 "어차피 똑같이 배구를 하는 곳이다. 나를 보내는 팀도, 받는 팀도 모두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잘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했다.

도로공사는 어쩌면 황연주에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팀. 황연주는 "이제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가 중요하다. 일단 1년간 최선 다하려고 한다"며 "새롭게 뭔가를 더 한다기 보다는 지금까지 했던 걸 바탕으로 팀에 도움을 주고 싶다. 어린 선수처럼 실력이 느는 나이도 아니다. 드라마틱하게 뭔가를 해주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팀을 밀어주는 선수가 되려고 한다. 끌어주는 건 주장과 (강)소휘가 하지 않을까 싶다"며 싱긋 미소 지었다.이종서 기자 bellstop@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