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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존재, 분명 큰 자극" 51년차 日칼럼니스트가 본 K리그와 J리그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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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가깝고도 먼 이웃, 숙명의 라이벌. 하지만 마냥 외면할 수 없는 존재인 건 분명하다. 한-일 양국 축구의 풀뿌리인 K리그와 J리그가 그렇다.

두 리그는 동아시아를 넘어 아시아 전체를 선도하는 브랜드다. 1983년 슈퍼리그로 출범한 K리그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국(12회)에서 볼 수 있듯 아시아 맹주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수많은 우수 선수들이 아시아 각지로 퍼져 나갔고, 유럽 무대에서도 톱클래스 실력을 자랑했다. 1993년 출범한 J리그는 K리그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장족의 발전을 이루며 아시아 최상위 리그 지위에 올랐다. 탄한한 자본과 시스템을 바탕으로 질적, 양적 성장을 이뤘다. 최근에는 수많은 선수들이 유럽으로 직행하고 있고, 영국 스포츠 OTT기업 DAZN과 총액 2조3000억원 규모의 중계권 계약을 연장하는 등 탄탄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1974 서독월드컵부터 활동 중인 일본 축구 칼럼니스트 고토 다케오는 웹스포르티바를 통해 'J리그와 K리그의 차이는 무엇인가, 사회 형태를 반영하는 한일 양국 프로 축구 리그'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챔피언십(동아시안컵)이 끝난 뒤 1주일 간 한국에 머물며 K리그를 관전했다는 고토가 먼저 찾은 건 지난 17일 대구 iM뱅크파크에서 펼쳐진 대구-김천전. 고토는 "경기 양상은 예전의 한국 축구와 달리 패스 연결이나 빌드업, 박스투박스 등 J리그 스타일, 레벨과 거의 차이가 없었지만, 격렬한 만큼은 J리그 이상이었고 위험한 플레이도 많았다"고 평했다.

그는 "1993년 J리그 창설 계기 중 하나가 1986 멕시코월드컵 최종전 한국전 완패다. 당시 모리 다카지 감독은 한국을 이끌던 김정남 감독과 친분이 있었는데, 김 감독을 통해 먼저 창설된 K리그를 계기로 양국 환경 차이를 절감하고 전문화 필요성을 통감했다"고 소개했다. 이후 J리그 창설 과정과 전두환 시절 3S 정책의 일환으로 불완전한 형태로 출범한 한국 프로스포츠의 역사를 설명했다.

고토는 양국의 상반된 프로화 전개 과정을 사회의 차이 관점에서 풀었다. 그는 "한국은 1980년대 아마추어 선수들도 실질적으로는 프로에 가까운 존재들이었다. 때문에 당시 높은 보수를 얻을 수 있는 홍콩 프로팀에 입단하거나, 유럽에 진출하는 선수도 많았다"며 "반면 일본은 당시 종신 고용 사회로 대졸 선수들이 실업팀에 입단하고 은퇴해도 정년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었다. 일본축구협회 수뇌부가 프로화에 반대한 것도 선수들의 은퇴 후 생활설계가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소개했다. 또 "한국과 일본 모두 프로팀의 모체가 된 건 대기업이었지만, 한국은 박정희 정권 시절 급성장한 신흥재벌이자 오너 일가가 의사 결정권을 쥔 기업이 대부분이었다. 정권과 연관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반면 일본은 기업 의사 결정 과정에 발의, 이사회 의결 등 시간이 걸리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각 사회 형태를 반영하며 발족한 한-일 프로축구리그지만, 성공에 이르기까지 서로의 존재가 큰 자극이 됐다는 사실은 분명히 기억해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