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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시장에서 수십 년 동안 배추 장사를 하셨던 어머니는 병약한 아버지 대신 생계를 책임지며 5남매를 길러내셨다. 공부 욕심이 제일 많았던 막내 홍실 씨는 어려운 형편이지만 장학금을 받고 여상에 들어가 제법 좋은 회사에 취직도 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는 큰 자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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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99세 생신을 맞아, 친정 언니들과 조카, 증손주들까지 한자리에 모인 날 홍실 씨는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엄마에 대한 기록을 선보인다. 왁자한 웃음과 함께, 뭉클한 감동을 나누는 그 순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라"는 딸들에게 "그런 소리 하지 마라"라며 손사래를 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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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볕이 따가운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잡초를 뽑으시는 조성임 할머니(99). 딸 사위가 아무리 말려도 들은 체, 만 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건 해야 해!" 역정을 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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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 가족, 홍실 씨 덕에 굴러간다
그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표 사이사이 어머니 드실 걸 챙긴다. 간식 창고가 동나지 않게 채워드리고 끼니마다 고기반찬을 올린다. 그 와중에 남편과 어머니 사이에 마음 상하는 일은 없는지 양쪽을 오가며 눈치까지 살핀다. 무던하고 밝은 성격, 언제나 호호 웃어주는 홍실 씨 덕에 대가족의 하루하루가 부드럽게 굴러간다.
# '산도적' 같은 내 남편은 1등 사위
일도 잘하고 어머니도 잘 모시고, 딸에 증손주까지 잘 보살피는 홍실 씨가 딱 하나 못 하는 게 있다. 바로 요리다. 그 빈틈을 메워주는 이가 남편 김기순 씨(62)다. 인상만 보면 상남자인 기순 씨는 홍실 씨가 '산도적'이라 부른다. 하지만 음식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직접 간수를 뺀 소금으로 김치도 담그고 호박 볶아서 만두까지 뚝딱 빚는다. 심지어 장모님 드리겠다고 한약재 넣고 닭백숙을 끓이는 남자가 어디 흔한가.
더욱 고마운 건, 홍실 씨가 어머니를 모시고 싶다 했을 때 "우리 집에 모시자" 선뜻 나서주었다. 실은 홍실 씨도 10여 년 동안 시아버지의 병수발을 들었다. 기순 씨는 그때의 고마움을 갚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다. 처음 장모님을 우리 집에 모셨을 때는 혹시나 밤에 무슨 일이 있을까 장모님 옆방에서 쪽잠을 잤다는 기순 씨. 퇴근길에는 장모님이 좋아하시는 꽃을 한 아름 사 들고 온다. 효녀 홍실 씨에 딱 맞는 짝꿍, 1등 사위, 기순 씨다.
# 아흔아홉, 잔치가 시작됐다
2년 전부터 어머니의 일상을 기록 중인 홍실 씨.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들에겐 어머니의 안부를 전하는 편지가 되어준다. 오랜만에 언니들이 놀러 온다는 소식에 홍실 씨는 영상을 편집해서 가족들 앞에 특별 상영회를 연다.
어머니의 아흔아홉 번째 생신날엔 홍실 씨의 둘째 딸, 김소희 씨(35)도 찾아와 온 가족이 생신 축하 노래도 불러드리고 증손주들은 열심히 연습한 춤 솜씨로 재롱 잔치를 선보인다. 뜻깊은 날, 가족들은 백 년을 살아온 소회를 물어보는데 늘 후렴처럼 달고 사시는 그 말씀을, 오늘도 꺼내신다. "너무 오래 살아 미안해 어서 가야 하는데".
평생 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억척스럽게 살아온 울엄마. 백수를 누리면서도 자식들한테 폐가 될까, 속 편히 웃지도 못하는 울엄마. 그런 엄마에게 마음으로 전하는 편지가 있다. 남은 날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하루하루가 즐거운 소풍 같고, 행복한 잔치와 같기를 그 곁에서 딱 붙어서 잔소리를 들어드릴 테니 지금처럼 내 멋대로 사시기를.
tokki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