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외야수의 포구 실책은 보기 드물다. 그만큼 치명적일 수 있다.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가 맞붙은 25일 부산 사직구장.
롯데는 6회부터 정철원을 출격시키며 승리를 정조준한 상황. KIA 역시 한발 앞서 불펜을 가동한데 이어 최지민-조상우로 이어지는 필승조가 총출동한 총력전이 펼쳐졌다.
롯데가 5-3, 2점 앞선 7회초. 롯데는 7회 최준용을 등판시켰다. KIA 베테랑 김선빈이 대타로 나섰지만, 땅볼로 잡아냈다.
다음 타자 박찬호는 중견수 쪽 뜬공을 날렸다. 빠른발로 따라잡은 황성빈이 막 공을 잡으려던 순간, 타구는 어이없게도 황성빈의 글러브에 맞고 그대로 흘렀다. 순식간에 현장을 아우성으로 가득 찼고, 박찬호는 재빠르게 2루까지 진출했다.
김태형 롯데 감독은 대노했다. 즉각 황성빈을 빼고 김동혁을 투입했다.
타구를 놓치고 돌아서는 황성빈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는 글러브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떨군 채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답답함과 승부욕이 폭발한 모양새였다.
앞서 6회말 공격에서 우익선상 2루타를 치고 한껏 고조됐던 기분이 단숨에 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내리꽂힌 것. 황성빈은 더그아웃에 비치된 일명 '코끼리 에어컨'의 송풍구을 후려치며 자책했다. 감정 표현에 솔직한 황성빈다운 행동이지만, 팀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은 아쉬운 행동이었다.
롯데는 이 실책이 빌미가 돼 이어진 1사 만루에서 최형우에게 희생 플라이를 내주고 5-4, 1점차로 쫓겼다.
다행히 홍민기가 뒤를 잘 수습하고, 한태양이 7회말 2사 2,3루에서 2타점 쐐기타를 때려내며 승리를 잘 지켜냈다.
평소에도 남다른 승부욕과 강인한 기질이 돋보이는 황성빈이다. '배달부'라며 놀리던 팬들을 올스타전 '배달의 마황' 퍼포먼스로 오히려 팬으로 바꿔놓았고, KIA '대투수' 양현종과의 치열한 신경전도 코믹하게 녹여냈다. 폭발적인 주루와 열정적인 세리머니로 많은 팬을 거느린 그다.
올해 조원우 수석코치의 직접 지도를 통해 한층 수비에서 호평을 받던 그이기에 이날의 어이없는 실수가 더욱 원통했을 수 있다.
그 뜨거운 열정과 승부욕을 팀의 승리로 연결짓는 게 바로 황성빈이란 선수다. 경기전 만난 김태형 롯데 감독은 "수비는 황성빈 장두성 김동혁 다 비슷비슷하지만, 과감성이나 안전빵 스타일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 황성빈은 (강한)'기질'이 있어 다른 선수들이 밀린다"며 그를 높게 평가했다.
다만 전날 경기에서도 사전에 논의되지 않은 기습번트 동작으로 인해 자칫 경기를 그르칠 뻔 했다. 번트를 대는줄 알고 홈으로 스타트를 끊었던 3루주자가 아웃될 뻔했던 것. 김태형 감독은 "그러면 안된다. 번트는 댈 거면 사전에 사인을 통해 교감을 해놓고, 확실하게 대줘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다음 상황에서 적시타를 치는게 또 황성빈만의 묘한 매력이다.
부상 방지차 하지말라는 1루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자신도 모르게 하다가 올해도 장기 부상을 겪고 돌아온 황성빈이다. 그 열정이 때론 해가 된다. 굴욕을 잊지 않고 터닝포인트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한편 황성빈이 파손한 송풍구는 경기 후 인터뷰를 위해 내려갔을 땐 수리돼있었다. 정황상 끝부분만 정리해서 다시 팁을 끼워놓은 것으로 보인다.
부산=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