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조선 한동훈 기자] 야구팬들 사이에서 '세금을 낸다'는 표현이 있다. 유망주를 육성하면서 겪어야 하는 시행착오를 일컫는다.
그런데 가끔 '변종'이 나온다. 프로 적응 기간 필요 없이 처음부터 잘하는 선수들이 종종 튀어나온다. 아마추어와 프로야구의 격차가 월등하게 벌어진 현대 야구에서 고졸신인이 데뷔 첫 해 1인분을 해내면 천재 소리를 듣는다. 2017년 이정후(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18년 강백호(KT)가 그랬다.
올해는 두산 베어스 박준순이다. 우투우타 내야수 박준순은 46경기 132타석 타율 0.317/ 출루율 0.338 / 장타율 0.447에 홈런 3개 OPS(출루율+장타율) 0.785를 기록했다. 웬만한 시즌이라면 신인왕을 받고도 남을 성적이다.
하지만 하필 올해 역대급 괴물 중고신인이 나타났다. KT 안현민이 18홈런에 OPS 1.152로 올해 신인왕을 예약해버린 것으로 부족해 MVP까지 노릴 태세다.
박준순은 "그런 말 나오는 것 자체로 이미 성공적"이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박준순이 대단한 점은 제한된 기회 속에서 스스로 자리를 쟁취했다는 사실. 박준순은 2025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6번에 뽑혔다. 투수 일색인 1라운드에서 선택된 유일한 내야수다. 정현우(키움) 정우주(한화) 배찬승(삼성) 김영우(LG) 등은 이미 스프링캠프 때부터 구단이 전략적으로 밀어줬다. 박준순은 2군에서 개막을 맞이한 뒤 대수비로 시작해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어느새 주전 3루수를 꿰찼다.
이렇게 되리라곤 박준순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다. 박준순은 "올해는 일단 1군에 오래 붙어 있으면서 선배님들 보고 배우려는 생각이었다. 운이 좋게 기회가 조금씩 왔다. 그렇다고 목표를 달성했다고 할 수는 없다. 아직 진행 중이다. 부상 없이 잘 완주하고 싶다"고 자신을 낮췄다.
무엇보다 타격 성장세가 놀랍다. 박준순은 4월 처음 1군에 왔을 때 타율 0.167를 치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6월 22일까지 초반 26경기 49타석 타율이 0.222에 불과했다. 이후 6월 23일부터 19경기 83타석 타율이 0.372다.
박준순은 "프로에 와서 가장 다른 점이 스피드였다. 패스트볼에 최대한 타이밍이 늦지 않으려는 연습을 중점적으로 했다. 2군에서 야간에 혼자 기계볼을 엄청 빠르게 맞춰놓고 훈련했다. 기계로 빠른 공을 눈에 익힌 점이 도움이 됐다. 거기서 타이밍을 맞춰 나가면서 방망이 중심에 맞기 시작해 감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자세도 살짝 교정했다. 박준순은 "제가 중심이 많이 낮았다. 너무 앉아 있는 느낌이어서 그냥 한 번 편하게 쳐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2군 경기에서 그렇게 해봤는데 결과가 좋았다. 그래서 계속 했다. 상체를 세우니까 타구 질이 좋아졌다"고 밝혔다.
타고난 재능에 자신만의 노력까지 더해 이렇게 단기간에 놀라운 진화를 이뤄냈다.
박준순의 롤모델은 김하성(탬파베이 레이스)이다. 박준순은 "김하성 선배님처럼 역동적인 느낌의 선수로 성장하고 싶다. 수비적인 부분은 보완할 점이 많다. 부상 없이 시즌을 완주하는 게 목표다. 열심히 하다 보면 팀도 이기는 경기를 많이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더 성장해 나가는 그런 시즌이 됐으면 좋겠다"고 다짐했다.
한동훈 기자 dh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