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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샷!] 10분만에 동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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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만 가더라도 중국산이 많고 알리에서 팔 것 같은 느낌이 강하죠. 반면 이곳 기념품은 아주 특별해요."(네덜란드인 톰 씨)
"유럽과 미국 곳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박물관을 다녔지만 그 어디보다 기념품이 흥미롭고 개성 있어요."(미국인 제니퍼 씨)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기념품 매장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이구동성 'K-뮷즈'를 높이 평가했다.
뮷즈는 뮤지엄(박물관)과 굿즈(상품)를 합친 신조어.
K드라마, K팝, K푸드에 이어 K-뮷즈도 부상하고 있다.
이렇다 할 기념품이 없던 한국에 뮷즈가 '한국에 오면 꼭 사야 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부 뮷즈를 두고는 품절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 "오직 이곳에서만"…한국을 담은 '뮷즈'의 힘
이날 국립중앙박물관 기념품 매장은 방문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취객 선비 술잔,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등 인기 상품은 모두 품절이었다.
방문객들은 뮷즈의 '한국적인 개성'을 강점으로 꼽았다.
한국 민화가 새겨진 마스킹 테이프를 살펴보던 미국인 노리스(50) 씨는 "쏘 쿨"(So cool)을 연발했다. 그의 아내 제니퍼(45) 씨는 양손 가득 노트와 지우개, 북마크 등을 집은 모습이었다.
미술사를 전공했다는 제니퍼 씨는 "유럽은 각기 다른 도시의 박물관인데도 동일하거나 유사한 기념품을 팔고 있지 않나"라며 "심지어 이곳은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얼마 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다녀왔는데 너무 비싸서 하나도 사지 못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인 톰(27) 씨도 "세계 어느 곳보다 품질이 우수하고 저렴하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 루브르 박물관을 다녀왔는데 그곳 기념품들은 모나리자 작품을 이것저것에 '복사·붙여넣기' 한 느낌이었다"며 "무언가 기념품을 산다면 그 지역에서 만들어져 특별하거나, '예쁜 그림을 프린트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곳이 낫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렘브란트, 다빈치 등 대표작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유럽의 미술관이라면 이곳은 오직 한국 작품들로만 구성돼 기념품에도 그러한 특성이 묻어난다"고 짚었다.
톰과 함께 온 김다인(30) 씨도 "모든 제품이 국내에서 만들어진 만큼 관광객에게는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모방하기도 어렵고 오직 이곳에서만 살 수 있으니 하나의 세일즈 포인트가 된다"고 평가했다.

◇ '케데헌' 타고 치솟은 인기…'취객선비' 작년 15억원 매출
국립중앙박물관과 뮷즈는 방탄소년단(BTS),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 K-컬처가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흥행이 이러한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23일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달 20일까지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은 총 407만3천6명으로 지난해 동기(233만3천976명)의 1.7배에 달한다.
아울러 올해 1∼7월 뮷즈 매출액은 164억3천700만원으로, 작년 동기(103억7천900만원)와 비교하면 58%, 2023년 동기(78억4천100만원)와 비교하면 109% 증가했다.
대표적인 인기 상품은 '취객선비 3인방 변색잔'으로,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의 '평안감사향연도'(平安監司饗宴圖) 속 선비를 모티브로 했다. 차가운 음료를 부으면 선비 얼굴이 빨개지는 점이 특징이다. 작년 한 해 6만여 세트가 팔리면서 약 15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BTS 멤버 RM이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도 화제다. 무궁화와 데니 태극기를 손에 꽂을 수 있도록 설계된 '반가사유상 광복 에디션'은 현장 입고 10분 만에 동났다.

'케데헌'이 흥행하면서 뮷즈 '까치호랑이 배지'도 품절 대란이 일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까치(서씨), 호랑이(더피) 캐릭터와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7월 출시된 이 배지는 지난달에만 3만8천104개 팔렸다. '케데헌' 열풍을 타고 10차례에 걸쳐 예약판매를 진행했으나 모두 빠르게 품절됐다. 10차 입고는 오는 12월 순차발송된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온라인숍 내 까치호랑이 배지 주문창에는 "본 상품은 주문폭주로 순차적으로 발송되는 상품"이라는 안내가 뜬다.
재단 측은 온라인숍 메인화면에 팝업 안내문을 띄워 "주문량이 평소보다 급증해 배송이 지연된다.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성원으로 유선상담이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 100% 국내 3D 프린팅 반가사유상…"오묘한 미소·옷 주름에 힘써"
뮷즈 상품의 85%가량은 '메이드 인 코리아'가 붙은 국산이다. 그중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100% 국내 3D프린팅 기술과 소재로 만들어진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를 전담 생산하는 3D프린팅 기업 '글룩'은 2023년 백제금동대향로 미니어처를 시작으로 반가사유상 광복 에디션, 반가사유상 스노우볼 등 뮷즈를 제작하고 있다. 3D모델링, 레이저 조사, 경화, 도색, 검수, 포장 등 생산 전 단계가 모두 국내에서 이뤄진다.
21일 경기 파주 글룩 공장에서 만난 홍재옥 대표는 "반가사유상은 그 특유의 오묘한 표정과 옷 주름을, 금동대향로는 향로 상단에 새겨진 악사와 악기 등 디테일을 그대로 구현하기 위해 힘썼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재부터 기계, 인력을 모두 내재화하면서 가격경쟁력을 갖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면서 "국가유산을 굿즈화하는 작업인 만큼 대내외적인 신뢰도가 중요해 품질검사를 꼼꼼히 하고 있고 늘 긴장감을 갖고 있다. 저희에게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밝혔다.

글룩은 2∼3일에 약 300개의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완제품을 만들 수 있다.
홍 대표는 "공장을 확장하고 장비를 계속 늘리고 있어 최대한 빨리 만나보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생산 속도보다 팔리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웃었다.
이날 글룩 공장에서는 곧 출시될 '반가사유상 마음 버전'이 생산되고 있었다. '볼하트', '손하트'를 하고 있는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신상품이다.
홍 대표는 "뮷즈가 한국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새로운 플랫폼이 되어주고 있다"며 "규모는 작지만, 기술을 갖춘 이들이 실력을 펼칠 기회를 만들어주고, 이를 심지어 수익화함으로써 업체들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도전할 수 있는 장이 되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 "목표는 100% 국산화…그래야 국민도 자부심 느껴"
국립박물관문화재단 김은숙 상품기획팀 차장은 "뮷즈의 국내 제조 원칙을 최대한 유지하려 하고 있다"며 "목표는 100% 국산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조업계가 해외로 많이 떠나는 상황이라 100%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요 제조 공정이 해외에서 이뤄질 경우 '메이드 인 코리아'를 붙일 수 없다.
재단은 매년 뮷즈 상품 발굴을 위한 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는데, 참여 조건으로 '최종 제조국이 대한민국인 상품'을 내걸고 있다.
김 차장은 "그래야만 국민들도 K-컬처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실 것"이라고 말했다.
뮷즈 기획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유물에 대한 공감과 고증이다.
김 차장은 "취객 선비 술잔은 잔치를 즐기는 선비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해학을 시온 안료(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안료) 프린팅과 접목한 것으로, 친근감 있는 인물과 술이라는 소재가 많은 사람의 공감을 끌어내지 않았나 싶다"고 분석했다.
이어 "취객 선비 술잔이 유물을 모티브로 활용한 수준이라면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유물 재현'에 가까워 미소의 모양, 신체 비율 등 고증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하고, 이를 생산업체에도 유지해주기를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뮷즈의 인기에 대해 "너무 감사한 현상"이라며 "기관에서 기회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기업 및 소상공인이 성장할 수 있고, 더불어 우리 문화를 알릴 수 있어 모두에게 좋은 선순환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winkite@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