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스포츠조선 김민경 기자] "무심코 행해진 그런 행위는 프로야구선수를 위축시키게 하고, 더 나아가 한국 프로야구 전체를 멍들게 하고 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가 지난 20일 프로야구선수 향한 악성 댓글 자제 및 건강한 응원 문화 조성 호소문에 적은 내용이다. 팬들의 도를 넘은 선수 비판에 선수협이 대신 자제를 부탁했던 건데, 호소문이 발표된 지 하루 만에 선수가 팬에게 욕설로 똑같이 대응해 논란이 생겼다.
KIA 외야수 박정우는 23일 광주 LG 트윈스전에 앞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단순히 성적 때문이 아니다. SNS로 팬과 설전을 벌인 여파였다. SNS 메시지로 팬과 욕설을 주고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전화 통화까지 했을 정도로 선수가 꽤 흥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KIA 관계자는 "선수(박정우)와 몇 차례 면담을 진행했고,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분명한 것은 팬과 언쟁을 벌인 것이다.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자숙하는 차원에서 엔트리에서 말소했다"고 설명했다.
SNS로 팬들에게 욕설을 들은 결정적 원인은 지난 21일 광주 키움 히어로즈전 주루사다. KIA는 키움에 5-11로 끌려가다 7회 3점, 8회 2점을 추가하면서 10-11까지 추격했다. 9회 마지막 공격에서 끝내기 승리를 노렸는데, 1사 만루에서 2루주자였던 박정우가 찬물을 끼얹었다. 김태군이 좌익수 뜬공으로 물러날 때 키움 좌익수 임지열이 포구하자마자 2루 베이스에서 리드 폭이 컸던 박정우를 발견하고 바로 2루로 송구했다. 3루주자 김호령이 태그업해 홈으로 득점하는 것보다 2루에서 박정우가 포스아웃되는 게 더 빨랐다. 순식간에 병살이 되면서 KIA의 1점차 패배로 그대로 경기가 종료됐다.
KIA 팬들은 패배의 원흉이라고 판단한 박정우의 SNS를 찾아가 비난의 메시지를 남기기 시작했다. 박정우는 팬의 비난 메시지를 읽고 굳이 대응하다가 일을 키웠다. 일차적인 원인 제공은 팬에게 있지만, 프로선수가 똑같이 팬에게 욕설로 대응한 것은 분명 큰 문제다.
KIA 관계자는 "선수와 팬 사이에 개인적으로 벌어진 일이기에 구단 징계 대상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야구팬 커뮤니티에서 '박정우가 욕설을 주고받은 팬에게 고소를 당했다더라'는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구단이 확인해 줬다.
박정우는 이날 사과문을 올릴 예정이었지만, 해당 팬과 화해가 먼저라고 판단해 24일 직접 만나 사과하기로 했다.
최근 프로야구의 인기가 높아진 이면에 SNS상으로 선수들을 향한 도를 넘는 비난이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선수협이 호소문을 낸 배경이다.
선수협은 "SNS 등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부 몰지각한 이들의 도 넘은 행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이를 자제해 줄 것을 읍소 드리는 바이다. 한국프로야구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천만 관중 입장을 앞두고 있고, 특히 올해는 최단 기간에 돌파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이어지는 등 전례 없는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이는 팬들의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이나 응원팀 및 선수에 대한 애정을 밑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이에 국내 프로야구 전 선수단은 시즌 종료시까지 포기하지 않고 끈끈한 순위 싸움을 이어 가는 등 최상의 플레이를 선보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의욕이 앞선 노력들이 일부에게는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고, 혹은 일부 몰지각한 이들의 단순한 삐뚤어진 팬심의 과도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최근 프로야구선수들의 SNS 등에서 이뤄지고 있는 몰지각한 행위들은 이미 도를 넘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절대로 건강한 비판이나 사랑이 담긴 질책이라고 할 수 없으며 그저 무책임한 화풀이에 불과하다. 무심코 행해진 그런 행위는 프로야구선수를 위축시키게 하고 더 나아가 한국프로야구 전체를 멍들게 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선수를 향한 지나친 비난은 분명 잘못된 팬심이지만, 선수가 그릇된 팬심에 똑같이 대응하는 순간 위와 같은 호소에 힘이 실리지 않게 된다. 팬과 선수 모두 성숙한 응원 문화가 필요한 때다.
광주=김민경기자 rina113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