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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자르고 쌓아 균열을 꿰맸다…김민정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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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애프터 디 아더'…10월 19일까지 갤러리현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은은한 색감으로 염색된 한지(韓紙)를 길게 자르고, 가장자리를 불로 태운 뒤 조각들을 층층이 겹치게 지그재그로 쌓아 올린다. 서로 다른 색의 한지가 만나는 경계는 틈으로 보이지만 개별적인 요소를 꿰매 결합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유럽에서 활동하며 한지와 먹 등 동양화 미술 재료를 서양 미술과 결합해 온 김민정(63) 작가의 개인전 '원 애프터 디 아더'(One after the Other)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27일부터 열린다. 작가는 전시에서 새로운 연작 'Zip'(집)을 선보인다.

집은 헝겊을 열고 잠글 수 있도록 만든 지퍼(zipper)를 의미한다. 한지 끝을 태우고 곧바로 불을 꺼 남은 조각을 섬세하게 배열하는 작업으로 유명한 작가는 이번엔 염색한 색색의 한지들을 이용해 지퍼로 표현했다.
작가는 "지퍼를 채웠을 때 안정감과 따뜻함이 좋아 이를 표현하고 싶었다"며 "이번 작업에선 모두 지퍼를 채운 상태를 표현했는데 다음에는 지퍼를 좀 열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작가의 대표 연작 '산'도 선보인다. 작가는 '물소리'를 그리고 싶어 넘실대는 파도를 그렸지만 그림이 끝나자 나타난 것은 산이었다.
작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산' 작품에서 버려지는 종이를 얇게 잘라 해체한 뒤, 가장자리는 불로 태우고 이를 층층이 쌓아 올려 바닷물결의 소리를 형상화한 작품 '타임리스'(Timeless)를 창작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길이 8m에 달하는 대형 그림 '산'을 가운데 놓고 양쪽 벽에 '타임리스' 두 점을 걸어 한 작품으로 만든 초대형 설치 작업 '트레이스'(Trace)도 선보인다. 2024년 아트바젤 언리미티드 섹터 출품 이후 첫 공개다.

작가는 1962년 광주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뒤 1991년 이탈리아에서 유학했다.
한지에 안료가 스며드는 예측 불가능한 효과에 매료돼 수묵과 채색 추상화 작업을 했고, 2000년대부터 한지를 자르고 태우는 방식으로 동양 회화의 전통을 재해석하고 있다.
전시는 10월 19일까지.

laecorp@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