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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스틴은 어떻게 25년간 성범죄자로 할리우드를 지배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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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유력 영화제작사이자 배급사인 미라맥스 대표 하비 와인스틴이 여성을 희롱하고 성폭행한다는 사실은 할리우드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는 할리우드, 뉴욕,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25년 넘게 제멋대로 활개를 치고 다녔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맥스 베이저먼 교수는 신간 '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민음사)에서 공범들 덕택에 이 모든 범죄행위가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공범(Complicity)이란 다른 사람의 불법적 또는 비윤리적 활동이나 비위에 관여하는 것을 말한다. 협력(Collaboration), 일조(enabling)와도 어느 정도 중첩된다. 부역 또는 방조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저자는 와인스틴의 주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범죄에 협력했거나 적어도 방조하면서 그의 성범죄를 도왔다고 주장한다.

가령, 와인스틴은 비서를 통해 성공을 갈망하는 여배우나 모델들을 비즈니스 미팅이나 파티로 불러냈다. 범죄를 저지른 후에는 비서들이 범죄 현장에서 우는 여성들을 데리고 나가는 일을 도맡았다. 또한 와인스틴의 비서들은 피해자들의 전화번호를 '하비의 친구'로 분류해 저장했고, 그런 만남을 마련할 때 필요한 팁을 엮은 '필수 안내서'를 후임자에게 전달했다.
고위 간부들도 와인스틴의 범죄에 협력한 건 마찬가지였다. 미라맥스 이탈리아 지사 대표인 파브리치오 롬바르도는 "와인스틴의 유럽 포주"라는 악명을 얻을 정도였다. 와인스틴의 변호사는 이 모든 궂은일의 뒤처리를 담당해 "위층 청소부"로 불렸다.
수많은 에이전트와 매니저들도 적어도 방조했다. 정상급 에이전트인 연예기획사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CAA) 관계자들은 소속 유명 배우가 범죄에 당할 뻔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함구했다. 와인스틴이 스필버그 못지않은 할리우드의 권력이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와인스틴은 권력을 가진 인물이 힘없는 사람들을 성폭행한 사례"라고 비판했다.

이뿐만 아니다. 공모나 부역하는 사례는 역사에서 차고 넘친다. 유럽에 있는 유대인 900만명 중 600만명을 죽음으로 내몬 '홀로코스트'를 주도한 건 히틀러였지만, 그 모든 일을 혼자 저지를 순 없었다.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그는 파트너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았다. 히틀러의 모국 오스트리아는 나치 준군사 학살 조직의 인력 3분의 1을 제공했다. 이들은 가스실이 있던 주요 강제수용소 여섯 곳 중 네 곳을 통솔했다. 반유대주의 역사가 깊은 우크라이나와 발칸반도 국가들은 나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독일의 군사력에 겁을 먹고 대량 학살에 참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협력한 프랑스 비시 정부도 반유대주의법을 제정했고, 유대인이 운영하는 회사를 몰수했으며 유대인 7만6천명을 체포해 강제수용소로 이송했다.

저자는 이 밖에도 마약성 진통제를 팔아 이득을 얻었던 제약회사와 약품 유통사, 의사의 카르텔, 트럼프의 우파적 정책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홍보하며 이끌었던 공화당 내 백인우월주의자들 집단 등을 예로 들면서 주범과 공범의 공생관계를 지적한다.
저자는 "주범이 목적을 달성하면 공범들은 돈, 세력, 권력, 원하는 정책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도덕한 행위의 역사적 후과는 크다고 지적한다.
"타인의 부도덕한 행위에 가담하는 일은 사회의 모든 영역과 시대를 뛰어넘어 엄청난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 나치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부상한 일, 도널드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한 사건을 보라."
연아람 옮김. 292쪽.

buff27@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