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대한민국 축구 A대표팀 데뷔 무대에서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혼혈 미드필더' 옌스 카스트로프(23·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가 어떤 유형의 선수인지는 멕시코전을 보면 알 수 있다.
카스트로프는 10일(한국시각)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의 지오디스파크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A매치 친선경기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선발출전해 하프타임에 김진규(전북)와 교체되기 전까지 45분간 그라운드를 활발히 누볐다.
미국전에서 짧은 시간 후반 교체로 뛰며 국대 데뷔전을 치른 카스트로프는 이날이 두 번째 A매치이자 첫 선발 출전 경기였지만, 이미 기존 선수들과 수차례 호흡을 맞춰본 것마냥 자연스럽게 팀에 녹아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성장한 카스트로프는 8월 소속협회를 독일축구협회에서 대한축구협회로 변경한 후 이번 9월 A매치 명단에 전격 발탁됐다. '해외 태생 혼혈 국가대표' 1호다.
카스트로프는 45분 동안 상대 진영과 우리 진영, 좌우를 가리지 않고 폭넓은 활동폭을 보이며 홍명보 감독이 기대한대로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그는 전반전 동안 팀내 최다인 5개의 리커버리, 6개의 태클 시도, 3개의 차단을 기록했다.
전반 2분, 파이널 서드에서 멕시코 풀백 마테오 차베스의 공을 빼앗아 멕시코 수비진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10분, 하프라인 부근에서 멕시코 미드필더 마르셀 루이스의 볼 컨트롤 미스를 놓치지 않고 공을 탈취해 빠른 역습을 전개했다. 이강인, 김문환을 거쳐 박스 안으로 공이 배달됐고, 배준호가 쏜 슛이 골대를 살짝 벗어나 아쉽게 득점에 실패한 바로 그 장면이다.
20분, 이강인이 감각적으로 아웃프런트를 이용해 공간 패스를 찌르고, 공을 잡은 오현규가 상대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을 맞이했다. 비록 오현규의 슛이 빗나가 무위에 그쳤지만, 멕시코의 허를 찌른 이 장면에서 공을 차단해 이강인에게 연결한 선수도 카스트로프였다.
현역시절 레알 마드리드와 프랑스 대표팀에서 '공을 빼앗으면 지네딘 지단에게 패스를 연결'하는 임무를 수행했던 클로드 마케렐레처럼, 카스트로프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빼앗은 공을 대부분 플레이메이커 이강인에게 연결했다. 카스트로프의 압박은 거푸 좋은 찬스를 생성하는 자양분이 됐다.
카스트로프는 전반 도중 적장인 하비에르 아기레 멕시코 감독과 설전을 불사했다. 기존 한국 선수들에게선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카스트로프는 "경기에 최대한 집중하고 모든 걸 쏟아내려고 한다. 내가 반칙을 당한 상황이었는데, (아기레 감독이)'아무것도 아닌데 뭐 하냐? 일어나라'라고 말해 반응한 것뿐이다. 감정적인 상황은 아니었고, 경기 중 일어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카스트로프는 경기 전엔 애국가를 열창하는 모습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애국가가 나오는 순간 집에서 배운 것이 생각나서 자연스럽게 따라불렀다"라고 했다. 추정컨대, 한국인인 어머니에게서 애국가 조기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카스트로프의 모친은 미국전에서 데뷔전을 치른 카스트로프를 TV로 보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카스트로프는 "가족들이 기뻐했고, 나 역시 대표팀에 데뷔해 영광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카스트로프는 이번 2연전을 통해 월드컵 최종 엔트리를 고심 중인 홍 감독과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고대하던 축구팬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카스트로프는 "오늘 조금 더 뛸 수 있었는데 아쉽다"며 "오늘 조금 실수가 있었는데 수정해나가야 한다. 다음달 A매치에도 뽑히는 게 목표"라고 대표팀 재발탁에 대한 열망을 숨기지 않았다.
미국 원정 연전에서 미국을 2대0으로 꺾고 멕시코와 2대2로 비긴 홍명보호는 10월 국내에서 '남미 듀오' 브라질, 파라과이와 격돌할 예정이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