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홍명보호의 미국 원정, 최대 수확은 단연 스리백이다.
지난해 9월 오만과의 2026년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2차전(3대1 승), 6월 쿠웨이트와의 10차전(4대0 승)에서 스리백을 부분적으로 활용했던 홍명보 감독은 7월 국내파 위주로 명단을 꾸린 동아시안컵부터 스리백 카드를 본격 가동했다. 비록 일본에 패하며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홍 감독은 전술 자체에는 만족감을 표시했다.
유럽파들이 모두 합류하며 완전체가 된 9월 A매치, 홍 감독의 선택은 또 다시 스리백이었다. 홍 감독은 일찌감치 "동아시안컵 때 쓴 스리백을 유럽파 중심으로 테스트 해볼 계획"이라고 전했다. '돌아온 괴물' 김민재(바이에른 뮌헨)를 비롯해 센터백도 소화가 가능한 박진섭(전북)까지 무려 6명의 센터백을 선발하는 등 스리백 테스트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개최국이자 본선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 북중미의 두 강호, 미국(2대0 승)과 멕시코(2대2 무)를 상대로 모두 스리백을 내세웠고, 합격점을 받았다. 결과도 결과지만, 내용도 좋았다. 페널티박스 안에 세 명의 중앙 수비수를 고정시키는 클래식한 스리백을 가동했던 지난 동아시안컵과 달리, 김민재의 좌우에 포진한 센터백을 크게 벌리고, 압박 상황에서 과감하게 이들을 전진시키는, 트렌디한 스리백 운영으로 호평을 받았다. 홍 감독은 "아직 스리백을 플랜A라고 하기는 그렇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중요한 두 차례 경기에서 같은 전형을 다른 멤버로 나섰다는 것은 스리백에서 최적의 선수 구성을 찾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스리백이 홍 감독의 머릿속에 중요한 자리를 잡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홍 감독이 스리백을 활용하면서, 3-4-2-1 포메이션을 택한 것은 영민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 전형의 가장 큰 특징은 안정성을 높임과 동시에 빠른 역습이 가능하다. 여전히 역습 상황에서만큼은 최정상급 능력을 발휘하는 손흥민을 극대화할 수 있다. 실제 손흥민은 이번 2연전에서 2경기 연속골 포함, 2골-1도움을 올렸다. 여기에 3-4-2-1 포메이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는 윙어 보다는 10번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선수들이 더 어울리는데, 이번에 경기에 나선 이재성(마인츠) 이강인(파리생제르맹) 배준호(스토크시티) 이동경(김천) 등 대표팀 2선 자원들이 그렇다.
'황태자' 황인범(페예노르트)이 부상으로 빠지며 중앙이 고민이 될 수 있었지만, 옌스 카스트로프(묀헨글라트바흐)라는 이 전형에 최적화된 중앙 미드필더를 발굴, 해법을 찾은 모습이다. 카스트로프의 왕성한 활동력으로 수비와 허리, 나아가 공격까지 숫자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됐다. 미국, 멕시코전에 모두 나선 김진규(전북)도 입지를 넓히고 있다. 기술과 기동력을 모두 갖춘 김진규는 특히, 압박 상황에서 뛰어난 전술 소화력을 보였다.
이 전형이 확실한 플랜A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는 윙백 문제다. 잘 알려진대로 스리백의 키는 윙백이 쥐고 있다. 윙백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공격적일수도, 수비적일수도 있다. 특히 좌우 날개를 활용해 측면을 극대화하는 3-4-3과 달리, 3-4-2-1은 공격형 미드필더가 안쪽으로 좁혀지는만큼, 윙백들이 측면을 모두 커버해야 한다. 이 전형은 이론상으로는 최전방 공격수, 두명의 공격형 미드필더, 좌우 윙백까지 공격에 가담하는만큼, 포백을 쓰는 팀을 상대로 숫적 우위를 누릴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윙백이 공격적이어야 한다. 3-4-2-1 포메이션으로 분데스리가 무패우승을 달성한 레버쿠젠에는 알렉스 그리말도-제레미 프림퐁이라는 걸출한 윙백이 있었다. 둘은 윙어에 가까운 모습으로, 단일시즌 풀백 듀오 최다 공격 포인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안토니오 콘테, 후벵 아모림 등 3-4-2-1에 능한 감독들은 대단히 공격적인 윙백을 활용해 공격의 활로를 찾았다. 필요하면 윙어들을 번신시키기도 했다.
이번 미국 원정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윙백이었다. 기본적으로 파이브백에 가까울 정도로, 윙백의 위치가 낮았던 것도 있지만, 선수들의 공격 마인드도 아쉬웠다. 공격시 빠르게 뛰어나가야 하는데, 이 부분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측면에서 지원이 되지 않다보니, 한국의 공격은 중앙에서 직선적인 전진패스에 이은 역습이 대부분이었다. 실제 득점 장면 역시 한두 사람의 호흡으로 인한 빠른 역습에서 나왔다. 물론 멕시코전 손흥민의 골 장면은 김문환(대전)의 크로스에서 비롯됐지만, 전체적으로 측면을 활용한 공격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제 미국전에서는 단 1개의 크로스 밖에 성공시키지 못했다.
홍 감독 역시 윙백 문제를 고심하는 듯 하다. 그는 미국, 멕시코전 주전 윙백을 모두 바꾼 것을 비롯해, 교체 역시 윙백 자리에 집중했다. 홍 감독은 동아시안컵에서도 공격수를 이 자리에 실험했는데, 이번에도 '공격수' 정상빈(세인트루이스)을 윙백으로 테스트했다. 그렇게 인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명재(대전)도 스리백 보다는 포백의 풀백이 더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이태석(아우스트리아 빈)도 수비에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10월 A매치에서도 스리백을 가동할 경우, 이 자리에 대한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두번째는 박용우(알 아인) 딜레마다. 밸런스를 중시하는 홍 감독은 울산에서부터 함께 했던 '애제자' 박용우를 중용했다. 전통적인 앵커맨 스타일의 박용우는 빌드업 시 라볼피아나 전술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포백 시 두 명의 센터백 사이로 자리를 옮겨 볼을 전개하고, 수비시에는 포백 앞에서 숫적 우위를 만들어줬다. 잦은 실수로 도마 위에 오르곤 하지만, 그의 포지셔닝과 정확한 패스는 대표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중요한 축이었다. 홍 감독이 많은 비판에도 박용우 카드를 놓지 못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3-4-2-1에서는 다르다. 일단 세 명의 센터백이 빌드업을 하는만큼, 굳이 미드필더가 내려설 필요가 없다. 상대 압박에 대응하기에 숫적으로 불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볼피아나 움직임에 익숙한 박용우는 계속해서 아래로 처져서 플레이했다. 좌우 윙백이 올라가지 못할 경우, 박용우까지 무려 6명이 후방에 있게 되는 셈이다. 중앙 미드필더 1명이 홀로 전개를 하고, 전방에 3명만이 공격을 해야하는 상황이 된다. 허리든, 공격이든 숫자 싸움에서 어려움에 놓일 수 밖에 없다.
중앙 미드필더가 3명인 4-2-3-1(혹은 4-3-3)과 달리, 3-4-2-1에서는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가 허리진을 커버해야 하기 때문에 기동력이 필수다. 미국전 전반 경기력이 좋았던 이유는 김진규-백승호(버밍엄), 중앙 듀오가 활발한 움직임으로 과감한 전방 압박을 펼친 것은 물론, 세컨드볼에서 여러차례 승리를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탁월한 기술을 앞세워 상대 압박을 벗겨내며, 여러차례 전방에 좋은 볼을 공급했다.
하지만 박용우는 기본적으로 활동량이 많은 선수가 아니다. 카스트로프나 김진규가 전진하더라도, 후방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아 압박 강도를 떨어뜨렸다. 여기에 세컨드볼을 위한 움직임도 많지 않았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풀타임을 소화했음에도, 지상 경합 시도 자체가 단 두 번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수비에 크게 도움이 된 것도 아니었다. 박용우는 원래 수비력이 좋은 선수는 아니다. 포백에서야 숫자적 우위를 위해서 존재 자체가 중요할 수 있지만, 스리백 카드에서는 다르다.
무엇보다 박용우는 압박에 취약하다. 3명의 미드필더가 기용될 시, 박용우는 뒤에서 비교적 자유럽게 볼을 받을 수 있지만, 3-4-2-1에서는 곧바로 상대 압박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멕시코전에서 전진 패스 보다는 백패스가 많았던 이유다. 그럼에도 박용우의 가치는 분명하다. 박용우는 멕시코전에서도 90% 패스 성공률을 보이며, 공을 점유하는데 일조했다. 홍 감독은 멕시코전에서 끝까지 박용우를 기용했다. 하지만 스리백 카드를 플랜A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박용우 활용에 대한 고민은 분명 할 필요가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