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에릭 텐 하흐 감독이 레버쿠젠 지휘봉을 잡은 지 불과 62일 만에 불명예 하차했다. 레알 마드리드를 떠난 사비 알론소 감독의 후임으로 임명된 텐 하흐 감독은 단 2경기만에 짐을 쌌다.
표면적인 이유는 성적 부진이다. 레버쿠젠은 지난달 23일 안방에서 열린 2025~2026시즌 분데스리가 개막전에서 호펜하임에 1대2로 패한데 이어, 30일 베르더 브레멘과의 원정경기에선 3대3 무승부를 기록했다. 분데스리가에서 1무1패, 승점 1점에 그쳤다. 지난달 16일 SG소넨호프 그로스아스파흐와의 독일축구협회(DFB) 포칼 1라운드에서 4대0으로 승리했지만, 상대는 4부리그 팀이었다.
텐 하흐 감독은 여름이적시장부터 수뇌부와 갈등을 빚었다. 지난 두 시즌간 최고의 모습을 보인 레버쿠젠은 알론소 감독의 이탈과 함께 새판짜기에 나섰다. 플로리안 비르츠, 요나탄 타 등이 떠났다. 말릭 틸만, 자렐 콴사 등을 데려왔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했다. 여기에 텐 하흐 감독 특유의 독선이 선수단을 자극했다. 브레멘전에서는 내부 분열이 벌어지는 장면이 그라운드 곳곳에서 나왔다.
결국 칼을 빼들었다. 레버쿠젠 수뇌부는 텐 하흐 감독 체제에 미래가 없다고 결정했다. 시몬 롤페스 단장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아무도 이런 조치를 취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몇 주 동안 이런 구성으로는 새롭고 성공적인 팀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페르난도 카요 대표도 "시즌 초반에 이별하는 건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텐 하흐 감독은 구단에 서운함을 토로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맨유에서 실패한 텐 하흐 감독은 레버쿠젠에서도 불명예 퇴진했다. 레버쿠젠은 후임 감독으로 덴마크 대표팀을 이끌었던 카스페르 히울만 감독을 선임했다.
축구의 재미난 통계를 주로 다루는 스포츠두니아는 축구 역사상 가장 빨리 경질된 감독 톱5를 공개했는데, 텐 하흐 감독은 장수 감독이었다. 5위는 2009년 빌레펠트 지휘봉을 잡은 요르크 베르거는 단 1경기만에 짐을 쌌다. 빌레펠트는 이 경기에서 비기며 강등했다. 39년간 21개 팀을 맡았던 경험 많은 감독이지만, 강등의 상처는 너무 컸다.
4위는 루이지 델 네리 감독이었다. 2001~2002시즌 세리에A 올해의 감독상을 받으며, 첼시로 떠난 조제 무리뉴 감독의 후임으로 포르투 지휘봉을 잡은 델 네리 감독은 훈련 결석 등 경기 외적인 문제로 클럽 수뇌부와 갈등을 빚으며 단 한 경기도 치르지 못하고 경질됐다. 36일만이었다.
3위는 마틴 링 감독이다. 그는 2009년 케임브리지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회장과 갈등으로 단 9일만에 지휘봉을 내려놨다. 재밌는 것은 경질 후 16일만에 다시 복귀해서, 반시즌 동안 팀을 지휘했다.
2위는 데이브 배셋 감독이다. 1980년대 윔블던의 전설이었던 그는 윔블던을 4부에서 1부리그까지 올려놓는 놀라운 지도력을 발휘했다. 1984년 새로운 도전을 위해 크리스탈 팰리스 지휘봉을 잡았지만 단 4일만에 마음을 바꿔 윔블던으로 복귀했다.
1위는 리로이 로세니어 감독이다. 2000년대 초반 토키 유나이티드를 이끌고 리그원으로 승격시킨 로세니어 감독은 2007년 다시 토키의 지휘봉을 잡았다. 단 10분만에 상황이 급변했다. 곧바로 새로운 컨소시엄이 구단을 인수했고, 그를 해임했다.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로세니어 감독은 의연했다. 그리고 축구 역사상 깨지지 않을 기록을 완성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