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민경 기자] "뷸러는 포스트시즌과 같은 큰 경기, 중요한 상황에 던진 경험이 있는 투수잖아요. 그런 선수가 우리 클럽하우스에 합류한 것은 정말 크죠."
필라델피아 필리스 간판타자 브라이스 하퍼의 말이다. 지난해 LA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던 우완 투수 워커 뷸러가 필라델피아에서 또 한번 우승 반지를 낄 가능성을 키웠다.
뷸러는 13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코프먼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1볼넷 3탈삼진 1실점을 기록, 8대2 승리를 이끌었다. 뷸러는 필라델피아 유니폼을 입고 치른 데뷔전에서 승리투수가 되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필라델피아는 지난 1일 '뷸러와 마이너리그 계약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뷸러는 지난달 30일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방출 통보를 받아 자유계약선수 신분이 된 상태였다. 필라델피아는 포스트시즌을 대비해 마운드 강화가 필요했고, 뷸러가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뷸러는 지난해 다저스 월드시리즈 우승 주역이었다. 월드시리즈 2경기(선발 1경기)에 등판해 1승, 1세이브, 6이닝, 평균자책점 0.00으로 맹활약한 것. 정규시즌 16경기에서 1승6패, 89이닝, 평균자책점 5.38에 그친 아쉬움을 모두 털어낸 활약이었다.
그러나 다저스는 냉정했다. 뷸러는 2015년 다저스가 1라운드에 뽑은 유망주였다. 다저스 리빙 레전드 클레이튼 커쇼의 뒤를 이을 에이스로 거론됐고, 뷸러는 시속 100마일(약 161㎞)을 웃도는 강속구를 펑펑 던지며 구단의 기대대로 성장했다. 2019년 30경기, 14승4패, 182⅓이닝, 215탈삼진, 평균자책점 3.26, 2021은 33경기, 16승4패, 207⅔이닝, 212탈삼진, 평균자책점 2.47을 기록하며 사이영상급 투구를 펼쳤다.
2022년 뷸러는 시즌 도중 생애 2번째 토미존수술을 받은 뒤 내리막길을 걸었다. 2023년은 통째로 날렸고, 지난해도 정규시즌에 부진하면서 애를 먹었다. 다저스는 지난겨울 FA 시장에 나온 뷸러가 우승에 큰 힘을 보탰는데도 냉정히 외면하며 블레이크 스넬, 사사키 로키 등과 계약했다. 뷸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보스턴과 1년 2105만 달러(약 293억원)에 계약했다. 차기 커쇼로 불렸던 뷸러였기에 굴욕적인 금액이었다.
뷸러는 올해 반등을 다짐했지만, 보스턴에서 23경기, 7승7패, 112⅓이닝, 평균자책점 5.45에 그친 뒤 방출되는 굴욕을 당했다.
필라델피아는 절망에 빠진 뷸러를 염가에 빨리 낚아챘다. 보스턴과 계약은 보전되고, 필라델피아는 뷸러에게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인 76만 달러(약 10억원)의 한 달 치만 지급하면 되는 조건이다.
필라델피아는 최근 에이스 잭 휠러가 수술대에 올라 시즌을 접은 가운데 크리스토퍼 산체스, 레인저 수아레스, 애런 놀라, 헤수스 루자르도, 타이후안 워커로 선발진을 꾸리고 있다. 뷸러는 선발과 불펜 모두 가능하기에 포스트시즌에 아주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고, 이적 첫 경기부터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며 필라델피아를 웃게 했다.
뷸러는 캔자스시티전에서 직구(36개), 슬라이더(12개), 싱커(12개), 커터(10개), 너클 커브(9개), 체인지업(8개), 스위퍼(3개) 등 무려 7가지 구종을 섞었다. 직구 최고 구속은 95.5마일(약 154㎞), 평균 구속은 93.8마일(약 151㎞)로 형성됐다. 100마일을 던지던 뷸러로 돌아오진 못했지만, 가을야구를 기대하게 하는 공을 던졌다.
뷸러는 미국 현지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압박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준비했던 것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 매우 긍정적이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 만족한다"고 안도했다.
롭 톰슨 필라델피아 감독은 "뷸러는 우리가 필요로 했던 것을 정확히 해냈다"고 박수를 보냈다.
간판타자 하퍼는 "뷸러는 필라델피아에 딱 맞는 선수다. 솔직히 그는 포스트시즌과 같은 큰 경기, 또 중요한 상황에 던진 경험이 있는 선수다. 그런 선수가 클럽하우스에 합류한 것은 우리에게 정말 크다"고 이야기했다.
필라델피아는 기세를 이어 14일 캔자스시티전까지 8대6으로 승리하면서 시즌 성적 89승60패를 기록,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 확정 매직넘버를 1까지 줄였다. 이미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우승을 확정한 밀워키 브루어스(91승58패)와 내셔널리그 플레이오프 1번 시드를 두고 남은 시즌 경쟁을 이어 간다.
절망 가득한 한 해를 보내던 뷸러는 극적으로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전할 기회를 얻었다. 다저스에서 2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뷸러는 필라델피아에서 생애 3번째 우승 반지를 낄 수 있을까.
필라델피아는 포스트시즌에 뷸러를 선발과 불펜으로 모두 기용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뷸러가 가을 무대에서 또 한번 빅게임 피처의 면모를 보여준다면, 다가올 겨울 FA 시장에서 이번에는 제대로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민경 기자 rina113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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