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여름 끝자락부터 시작된 안양발 보랏빛 돌풍이 심상치 않다. 올해 구단 창단 이래 처음으로 K리그1 무대에 오른 FC안양은 강등 후보 1순위라는 세간의 평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강등권에서 벗어나 '가을 축구'를 바라보고 있다.
안양은 14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주와의 '하나은행 K리그1 2025' 29라운드 홈 경기서 2대1 역전승하며 경기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20라운드부터 22라운드까지, 24라운드부터 26라운드까지 두 번에 걸쳐 3연패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안양은 대전전(3대2 승) 서울전(2대1 승) 제주전까지 3연승으로 단 2주 만에 11위에서 8위로 점프했다. 11승3무15패 승점 36점을 기록한 안양은 강등권인 10위 수원FC(승점 31)와의 승점차를 5점으로 벌리고, 파이널 A그룹 진출권 마지노선인 6위 강원(승점 41)과의 승점차를 5점으로 좁혔다. 7위 서울(승점 40)과는 4점차. 유병훈 안양 감독은 "서울전이 동기부여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목표는 어떻게든 6강(파이널 A그룹)에 가는 것"이라며 "우린 아직 이룬 게 없으니 들떠선 안 된다"라고 했다.
안양의 3연승 돌풍 키워드는 크게 세 가지로 ▶유병훈 ▶외국인 대박 효과 ▶베테랑의 힘으로 요약할 수 있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 아닌 유 감독은 은퇴 후 고양 국민은행, 안양, 이랜드 등에서 무려 12년간 코치 생활을 했다. 지난해 안양 수석코치에서 감독으로 내부 승격한 유 감독은 1년 만에 안양의 숙원인 1부 승격을 이끌며 '준비된 지도자'라는 걸 입증했다. 올 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유 감독에 대해 '지나치게 모험적인' 전술을 쓰고 '프로 경험이 부족하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유 감독은 흔들리지 않고 안양의 컬러를 유지했다. 대신 안양을 더 까다로운 팀으로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전술을 연구했다. 7월 안양에 합류한 '국대 센터백' 권경원은 "유 감독님이 상대팀이 우리를 분석하지 못하게끔 꼼꼼히 준비한다"며 "(직접 훈련해보면) 공부를 많이 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매주 조금씩 다른 (전술)디테일을 전달해준다. 우린 그저 감독님만 따라가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유 감독은 경기 중 발생할 수 있는 변수에 대비해 여러가지 플랜을 미리 계획한다. 제주전에선 리드하는 상황에 대비해 발 빠른 공격수를 투입하는 플랜 A와 리드하지 못한 상황에 대비해 센터백 김영찬을 최전방에 세우는 플랜 B를 준비했고, 1-1 상황이던 후반 김영찬을 투입했다. 김영찬은 단단한 체구로 수비를 흔드는 역할을 하며 유키치의 결승골을 간접적으로 도왔다.
안양이 여름에 영입한 유키치, 시즌 전에 영입한 모따와 토마스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팀에 녹아들었다. 모따는 팀내 최다인 11골을 기록 중이고, 토마스는 센터백, 풀백, 미드필더를 가리지 않고 살림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안양은 K리그1의 다른 어느 팀보다 외국인 효과를 보는 팀이다. 권경원은 "우리팀이 외국인 선수를 보는 눈이 확실히 좋은 것 같다"라며 웃었다. 유키치는 "토마스와 한가람이 적응을 잘 도와주고 있다"라고 했다. 최근 경기 출전수가 적은 미드필더 에두아르도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내외 선수를 통틀어 가장 열심히 훈련에 임한다고 한다.
여기에 산전수전 다 겪은 주장 이창용 김보경 권경원 이태희 김다솔 등 베테랑이 팀을 지탱하고 있다. 베테랑의 존재는 두 번의 3연패를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최고참 김보경은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제주전을 마치고 '밑을 바라보면 밑에 있는 팀이 되고, 위를 바라보면 위로 올라간다'라는 메시지를 후배들에게 전달했다. 오랜 코치 생활로 선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유 감독은 외국인을 다루는 법, 베테랑을 다루는 법에 있어선 '도사'다. 베테랑들에겐 충분한 휴식을 부여하고 있다. 스쿼드 뎁스가 얇은 편인 안양이 100% 이상의 힘을 쏟아낼 수 있는 이유다.
다음 상대는 막강 스쿼드를 지닌 울산이다. 유 감독은 차분한 마음으로 4연승을 바라본다. "울산이 우리를 상대로 자신감을 갖고 있겠지만, 우리 역시 자신감을 갖고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