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재정 반대 '국가 마비 운동' 이어 노조 파업·시위 확산
"가난한 자 주머니 털어 부자에게 주는 정부" 분노
"마크롱 사임·탄핵이 답"…노조, 전국 100만명 참여 주장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정부의 긴축 재정 방침에 성난 프랑스인들이 지난 10일에 이어 18일(현지시간)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날 오후 2시 프랑스 수도 파리의 바스티유 광장엔 주요 노조가 주도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수만명은 족히 돼 보이는 이들은 다양했다. 교사, 학생, 약사, 철도·의료 노동자, 공장 노동자, 문화계 종사자가 한곳에 모였다.
각종 노조와 직군, 각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색색의 깃발을 선두로 시민들은 바스티유 광장을 출발해 레퓌블리크 광장을 거쳐 나시옹 광장까지 행진했다. '마크롱 꺼져', '마크롱 탄핵', '부자들에게 과세하라' 등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정부의 과세 정책에 항의하는 손팻말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누군가 "마크롱이 원하지 않아도 우리는 여기에 있다"고 선창하면 행진대열에서 거대한 외침이 퍼져나갔다.
문화계에 종사한다는 에스테르(23)씨도 페미니스트 동료들과 함께 거리에 나섰다.
그는 "지난해 조기 총선에서 우리는 분명히 마크롱 대통령에게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는데, 전혀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며 "정부는 점점 더 우경화되면서 경직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항상 부자들을 우대하는 정부에 진절머리가 난다"며 "공공 서비스를 수호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그 옆에 있던 릴루(26)씨도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예산은 우선 교육과 보건, 병원, 문화 분야에 투입돼야 한다. 현재처럼 부를 축적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데 쓰여서는 안 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강성 노조 노동총동맹(CGT) 노조원이자 전략 컨설턴트라는 엘루아(29)씨는 마크롱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 세바스티앵 르코르뉘를 총리로 임명한 것에 불만을 표했다.
그는 "이건 마치 마크롱 본인이 총리를 맡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우리가 오늘 여기 모인 건 새 정부에 반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7∼8년간 시행해 온 반사회적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의 정책은 불평등을 심화시킬 뿐이고 가장 부유한 이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항상 가장 가난한 이들을 겨냥한다"며 "프랑스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 중 하나는 그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탄핵당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자동차 공장에서 30년 넘게 일한 파트리스(61)씨도 동료들과 시위에 동참했다.
그 역시 정부에 불만이 컸다. 그는 "정부에게선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정부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 노동자들, 일하는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빼앗아 가장 부유한 사람들에게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이전 프랑수아 바이루 정부가 정부 지출 가운데 국방 예산만 증액하기로 한 점도 맹비난했다.
그는 "이 예산은 군대, 무기, 전쟁에도 쓰일 텐데, 나는 그런 것에 반대한다. 프랑스가 어디에서든 전쟁에 개입하는 걸 반대한다"며 "우리와 무관한 위기의 대가를 우리가 치러야 하는 것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이어 "마크롱이 사임을 해도 나는 울지 않을 거다. 오히려 기쁠 것"이라며 "하지만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들은 항상 똑같은 일, 가장 부유한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한다. 대통령이 바뀌는 것으로 사회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비관했다.
내무부는 이날 전국에서 700건의 시위가 발생했고, 파리 5만5천명을 포함해 총 50만6천명이 참여했다고 집계했다. 이 가운데 309명이 체포됐고 134명이 구금됐다.
이날 집회를 주도한 CGT는 전국적으로 100만명 이상이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내무부는 이날 집회가 폭력 시위로 번지는 것을 막고 질서 유지를 하기 위해 전국에 8만명 이상의 경찰과 헌병대를 배치했다.
곳곳에서 시위대와 크고 작은 충돌이 일어나 총 26명의 경찰관과 헌병이 다쳤다.
철도 노동자들이 대거 파업에 나서면서 이날 고속열차를 제외한 도시 간 일반 열차, 지역 내 열차(TER) 운행에 상당한 차질을 빚었다.
파리교통공사(RATP) 4대 노조도 파업에 나서 자동 운행되는 지하철 3개 노선(1·4·14호선)만 정상 운행되고, 나머지 지하철 노선은 출퇴근 시간에만 겨우 운행됐다.
약사 노조도 거리로 나서 80∼90%의 약국이 문을 닫았다. 중고등학교 교직원의 45%도 파업에 참여해 학교 수십 곳이 전면·부분 봉쇄됐다.
시위 주변 상점들은 폭력 사태가 발생할 것에 대비해 진열대에 자체 가림막을 설치하거나 아예 문을 닫았다.
사임한 브뤼노 르타이오 내무 장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이날 시위로 "프랑스가 마비되진 않았다"며 "일부 급진주의자가 시위를 방해하려 시도했으나 경찰의 신속한 대응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제한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신임 총리는 성명에서 "노조 대표들이 제기하고 시위대가 행진에서 전달한 요구사항들은 내가 시작한 협의의 핵심"이라며 대화에 열려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이날 발생한 일부 폭력 상황에 대해 "폭력은 합법적인 정치적 행동 수단이 아니며, 누구도 이를 용납해선 안 된다. 법을 준수하지 않는 시위의 자유는 있을 수 없다"며 불법엔 엄중히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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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