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 같으면 지금쯤 마을 회의를 열어서 송이 수확을 준비하는데 올해는 전혀 그런 게 없습니다. 산에 가봐도 바닥에 풀만 자랐지 소나무는 다 타고 없습니다."
경북 영덕에서 송이를 채취해 온 오도흥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산불로 송이 수확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21일 영덕군에 따르면 영덕은 산림조합중앙회 공판물량 기준으로 13년 연속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물량이 거래된 국내 송이 최대 생산지다.
지난해에는 15.9t이 거래돼 전국의 22.3%를 차지했다.
군은 개인 간 거래를 포함하면 지난해에 40t의 송이를 수확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올해 3월 의성에서 시작해 영덕까지 번진 대형 산불로 영덕의 송이산이 큰 피해를 봤다.
송이산 피해는 영덕뿐만 아니라 다른 산불 피해지역도 마찬가지다.
경북은 송이 생산량이 연간 160t(4천316가구) 규모로 전국의 63%를 차지했으나 지난 3월 말 발생한 대형 산불로 영덕, 청송, 안동 등 전국 주요 송이 생산지역의 60% 이상이 전소됐다.
산불이 번진 영덕, 안동, 의성, 청송, 영양 5개 시군 송이버섯 임가는 2천51가구(연간 76t 생산)로 이 가운데 1천30가구(52t)가 산불 피해를 봤다.
영덕군은 영덕 송이 생산지역 6천500㏊ 중 약 61.5%인 4천여㏊ 소나무 숲이 불에 탄 것으로 집계했다.
산불로 송이산이 대규모 피해를 본 만큼 생산량이 급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영덕에서도 생산량이 가장 많은 읍·면은 지품면, 지품면에서도 생산량이 가장 많은 마을은 삼화2리다.
그런 만큼 삼화2리는 송이로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마을이다.
그러나 삼화2리 주민이 송이를 채취해 온 산인 국사봉은 지난 봄 산불로 모두 탔다.
시간이 지나면서 탄 나무 아래로 풀이 자라고 있지만 이미 타버린 나무는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영덕군산림조합도 한산한 분위기다.
영덕군산림조합은 2020년에는 9월 22일, 2021년에는 9월 7일, 2022년에는 9월 12일, 2023년에는 9월 18일, 2024년에는 10월 2일에 첫 수매를 했다.
지난해를 제외하면 대부분 9월 중순에 수매를 시작했지만 지난해와 올해에는 폭염 영향으로 송이가 늦게 날 것으로 산림조합 측은 판단한다.
산불 영향으로 물량이 줄면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김석환 영덕군산림조합 상무는 "산불이 나도 포자가 존재해서 1∼2년 정도는 송이가 완전히 줄지 않는다는 학계 보고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알 수 없다"며 "대체로 송이 생산량이 줄고 생산 시기도 늦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림청과 경북도는 영덕의 송이버섯 산지 생산기반을 복구하기 위해 '송이 생물자원 스마트밸리' 조성을 추진한다.
이 사업은 내년부터 4년간 450억원이 투입돼 국립송이버섯복원 연구소, 임산 식·약용버섯 재배단지, 송이버섯 테마파크 조성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사업이 내년부터 연차적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당장 송이 생산 농업인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송이의 경우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돼 채취 농업인은 특별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다만 경북도는 농기계와 어구, 소상인, 송이 피해에 대해서는 일정한 성금을 배분키로 했고 산림작물 종자·종묘 구입 등에 필요한 보조사업을 지원키로 했다.
경북의 대표 농산물 중 하나인 사과도 산불에 따른 후유증이 심각하다.
산불이 난 의성, 안동, 청송 등은 사과 주산지로 손꼽힌다.
경북도에 따르면 안동·의성·청송·영덕·영양 등 5개 지역의 사과 재배지 피해 면적은 전체 9천362㏊의 18%인 총 1천698㏊다.
지역별 피해 면적은 안동 868㏊, 의성 411㏊, 청송 309㏊, 영덕 74㏊, 영양 36㏊로 나타났다.
산불이 휩쓸고 간 밭의 사과나무들은 말라 죽거나 제대로 생장하지 못해 이미 뽑혀 나갔다.
산불 열기를 맞은 사과나무에서 맺힌 사과는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상품성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피해 농민은 사과를 새로 심었지만 다시 수확할 수 있을 정도로 자라려면 5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안동시 길안면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송규섭(54)씨는 사과나무의 15%가 산불로 피해를 봤다.
이미 수확이 끝난 조생종 아리수와 홍로의 경우 과원 절반 이상이 타서 수확량이 그만큼 줄었다.
중생종이나 만생종 수확이 끝나봐야 알 수 있지만 전체적인 수확량은 20∼25% 감소할 것으로 본다.
송씨는 "불이 닿은 나무는 잎이 나도 열매가 제대로 맺히지 않아 내년이나 내후년 정도에나 열매가 날 듯하다"며 "주변에 워낙 피해를 본 분들이 많고 새로 심은 나무가 탄 분은 다시 시작해야 해서 보이지 않는 피해도 크다"고 전했다.
청송군 진보면 주민 박선영(54)씨는 약 1만㎡에 심은 사과나무 1천800여그루가 모두 탔다.
대부분 수확이 가장 잘 된다고 하는 8년차 나무였다.
불이 지나간 나무는 잎이 나더라도 열매가 제대로 달리지 않고 달리더라도 형태가 이상하거나 크기가 작아 팔 수 없을 정도다.
그나마 국회 산불피해지원대책특위가 산불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의결했지만 아직 국회에서 완전히 통과되지 않아 어느 정도 지원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씨는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해 보험금을 받았지만 겨우 1년간 출하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으로 새로 심을 나뭇값에 불과하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세 식구 기준으로 한 달에 120만여원을 11개월간 지원해 준다고 하니 보상이 넉넉하지도 않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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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