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흔이 된 직장인 박승우씨는 새해 첫날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영포티'(젊은 40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박씨는 "뭐만 하면 영포티라고 놀리니 취미나 패션도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고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며 "젊어 보이려 유난 떨며 흘러가는 세월에 적응 못 하는 '피터팬 증후군'이 아닐지 신경 쓰인다"고 했다.
21일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를 통해 최근 1년 동안 '영포티'(young forty)에 대한 온라인 언급량 10만4천160건을 분석한 결과 부정적 키워드와 연관된 비율이 55.9%에 이르렀다. 긍정적 비율은 37.6%, 중립적 비율은 6.5%였다.
감성과 연관된 검색 키워드 상위 10개 중 7개가 '욕하다'(1천39건), '늙다'(716건), '역겹다'(417건) 등 부정적 키워드였다. 긍정적 키워드는 '젊다'(1천109건), '좋아하다'(1천7건) 등 3개에 불과했다.
'영포티'는 매년 트렌드를 분석해온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 2015년 'X세대'를 겨냥해 처음 명명했다고 한다. 유행에 민감하고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중년의 라이프스타일을 뜻하는 말이었다.
김 소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중위연령이 높아지며 지금의 40대는 과거의 30대 같은 느낌이 됐다"며 "해외여행 자유화와 경제 호황을 겪은 X세대가 새로운 중년의 삶의 방식을 보여줬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기업들도 영포티를 '블루칩'으로 평가하며 패션·미용 등에서 중년 배우를 모델로 내세우고 40대를 위한 제품군을 확대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이 중년들의 항변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영포티 브랜드'라는 이름으로 패션에 관심이 많은 40대가 주로 입는 옷들을 비꼬는 이미지가 퍼지고 있다.
뉴에라 모자와 슈프림·스투시 티셔츠, 나이키 농구화 등 스트리트 패션 아이템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오렌지색 아이폰 17도 이들 목록에 합류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요즘 러닝화 주가가 안 되는 건 아저씨들이 일상화로 신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일부 중년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입고 싶은 옷을 사서 입는 건데 왜 조롱하나. 기분 나쁘다", "너는 안 늙을 줄 아느냐" 등 반발하고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영포티는 청소년기 외환위기로 누리지 못했던 것을 성인이 돼 경험하고 싶다는 적극적 표현을 하는 것"이라며 "문화적 주류인 MZ세대에 대한 부러움도 저변에 깔려있다"고 짚었다.
'젊은 척하는 중년'을 넘어 1970∼1980년대생 일반에 대한 혐오 표현으로 의미가 확장되는 움직임도 보인다. "영포티 팀장이 신입한테 꼰대 짓한다", "영포티나 586이나 똑같은 기득권 아니냐"며 비난하는 식이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40∼49세 인구는 761만명으로 전체의 14.9%에 달한다. 거대한 '쪽수'에 소비력까지 갖추며 우리 사회의 명실상부한 기득권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젊은 층의 시각이다.
2년 차 직장인 A(27)씨는 "자신은 윗세대와 다르다고 하지만 모두 똑같은 '꼰대'"라며 "여성 후배에게 허세 부리는 모습을 보면 '나는 저렇게 나이 들지 말아야지' 생각하곤 한다"고 말했다.
'영포티 혐오'의 배경에는 20대 남성의 보수화 현상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썸트렌드도 '민주당'(1천314건), '좌파'(1천67건) 등의 단어가 영포티와 함께 자주 언급됐다고 분석했다.
젊은 여성에게 추태를 부리는 중년 남성을 가리키는 '서윗(sweet) 영포티'라는 신조어도 반(反)페미니즘 성향의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앞에서는 여성 인권을 부르짖고 뒤에선 치근덕대는 이중적 행태를 보인다는 주장이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적 뒷받침도, 정치적 권력도 갖지 못한 20대는 문화적 주도권까지 40대가 뺏어가려 한다는 분노와 불만을 표출할 수 있다"며 "기성세대는 누르려 하고 새 세대는 수용이 되지 않으니 극단적 세대 혐오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김 소장에게도 이 같은 영포티 혐오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물었다.
"겉모습만으로 조롱거리로 삼는 거 같아요. 제가 얘기한 영포티는 사고방식과 태도, 가치관이 바뀐 중년을 의미한 거였어요. 모든 사람이 획일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건강하지 못해요. 우리 사회의 관성을 깼다는 점에서 영포티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away777@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