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포츠조선 허상욱 기자] 20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키움과 롯데의 경기 1회말, 아찔한 상황이 펼쳐졌다. 리드오프로 나선 롯데 황성빈이 키움의 신인 투수 박정훈의 투구에 머리를 맞았기 때문이다.
위험한 헤드샷 상황에서도 황성빈은 고통을 참고 벌떡 일어나 당황한 루키 투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인배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키움이 1회초 송성문의 좌월 2점 홈런으로 선취점을 올린 가운데, 좌완 루키 박정훈이 마운드에 올랐다. 이날 박정훈의 선발 등판은 프로 데뷔 세 번째였다.
볼카운트 1B1S 상황에서 박정훈의 투구가 손끝을 떠나는 순간 "딱!" 하는 소리와 함께 타석의 황성빈이 오른쪽 귀를 감싸쥐며 주저앉았다. 헤드샷이었다.
순간 그라운드에 정적이 흘렀다. 앞서 두 개의 직구로 카운트를 잡아나가던 박정훈은 3구째 슬라이더를 던졌지만 제구가 되지 않았다. 황성빈이 자신의 공에 머리를 맞자 박정훈은 공을 던진 왼손을 바라보며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조원우 수석코치와 트레이닝 코치가 재빨리 달려나와 황성빈의 상태를 살폈다. 빠른 직구가 아닌 변화구를 맞았기에 그나마 다행인 상황이었다. 몸을 웅크리며 주저앉았던 황성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정신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때 박정훈이 타석 앞까지 내려와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여 미안함을 전했다. 신인의 당황한 마음을 잘 알고 있던 황성빈은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는 인사를 건넸다. 상대팀이지만 신인을 배려한 선배의 품격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헤드샷을 맞았지만 질주 본능은 막을 수 없었다. 이어진 한태양의 타석에서 1루에 나간 황성빈이 초구부터 도루를 시도했다.
김건희의 날카로운 2루 송구가 이어졌지만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감행한 황성빈의 손이 이미 베이스를 터치한 후 였다. 한태양의 볼넷으로 무사 1,2루 득점 기회가 만들어졌으나 윤동희의 병살타로 황성빈은 3루까지 진루했다.
3루에 진루한 황성빈에게 송성문이 다가왔고 황성빈은 헬멧을 벗어 벌겋게 부어오른 오른쪽 귀 뒤쪽을 보여줬다. 송성문은 여전히 뜨거웠던 그의 귀를 살며시 어루만지며 위로했다.
이어진 2사 3루 상황에서 레이예스가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얻어냈고, 3루주자 황성빈은 박정훈의 투구가 뒤로 빠진 틈을 타 홈으로 파고들어 득점에 성공했다. 헤드샷을 맞고도 도루와 득점까지 성공한 황성빈의 투혼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