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스포츠조선 김민경 기자] "한국 문화와 야구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모습이 있었다. 소통이 잘되다 보니까 언젠가 올라올 것이라는 믿음을 준 거죠."
박진만 삼성 라이온즈 감독은 시즌 초반 외국인 타자 르윈 디아즈가 방출설에 휩싸였던 때를 되돌아보며 웃었다. 그때는 박 감독과 디아즈 모두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웃어넘길 수 있다. 디아즈가 그 시간을 잘 극복한 것을 뛰어넘어 KBO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
디아즈는 올 시즌 137경기에서 타율 0.302(526타수 159안타), 48홈런, 144타점, OPS 0.993을 기록했다. 홈런왕과 타점왕은 경쟁자들을 크게 따돌리고 일찍이 확정 지었다.
신기록 달성 여부가 유일한 관심사다. 디아즈는 2015년 삼성 야마이코 나바로가 달성한 홈런 48개를 따라잡고, 역대 외국인 타자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공동 1위에 올라섰다. 삼성은 정규시즌 7경기를 남겨두고 있는데, 디아즈가 홈런 2개를 더 쏘아 올리면 외국인 타자 역대 최초로 50홈런 고지를 밟는다. 국내 타자까지 포함하면 삼성 이승엽(1999, 2003년), 현대 심정수(2003년), 넥센 박병호(2014, 2015년) 이후 역대 4번째 50홈런 타자가 된다.
KBO 역대 한 시즌 최다 타점까지는 단 3개를 남겨두고 있다. 디아즈는 2015년 박병호가 기록한 146타점을 곧 넘어설 수 있을 전망이다.
삼성은 지난해 대체 외국인 타자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던 디아즈와 총액 80만 달러(약 11억원)에 재계약했다. 흔히 구단들이 원하는 거포 4번타자 유형은 아니었지만, 지난해 KBO 적응을 이미 마친 이점이 있었고 1루 수비도 준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4월까지만 해도 디아즈 교체설이 끊임없이 나왔다. 4월 초에는 타율이 0.190까지 떨어져 있었기 때문. 삼성은 조급해하지 않고 디아즈가 반등하길 기다렸다. 섣불리 포기를 말하기에는 그리 처참한 성적도 아니었다.
인내의 결말은 KBO 역사에 남을 외국인 타자의 등장이었다. 디아즈는 4월 말부터 홈런을 몰아치기 시작하더니 페이스를 쭉 이어 5월까지 시즌 홈런 22개를 기록했다. 잠깐 주춤하다 싶다가도 곧 홈런을 펑펑 치면서 50홈런 역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박 감독은 21일 수원 KT 위즈전에 앞서 디아즈를 기다릴 수 있었던 배경과 관련해 "작년에 보여준 모습도 있었고, 워낙 성실하니까. 외국인마다 성향이 있는데, 디아즈는 잘 받아들인다. 한국 문화와 야구에 대해서 받아들이려고 하고, 그런 점에서 소통이 잘되다 보니까. 언젠가는 올라올 것이란 믿음을 준 것이다. 안 좋은데도 자기 것만 찾다가 무너지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 야구는 본인의 기술보다도 어느 정도는 경험이 더 중요한 부분도 있다. 그런 부분을 조언했을 때 받아들이는 게 좋았고, 본인이 잘 이겨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50홈런 타자가 되리라고 믿었던 것은 아니다.
박 감독은 "시즌 초에 30개 정도는 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50개는 상상도 못했다. 그만큼 그런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고, 구단에서도 이런 성격이나 성향을 알고 기다려주면서 본인한테 조금 여유를 줬던 게 (좋은)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고전하던 디아즈를 지켜보다 면담을 진행했는데, 이 면담이 효과적이었다고 믿기도 한다.
박 감독은 "외국인 중에 (지난해) 맥키넌이라고 있었다. 맥키넌이 홈런 타자가 아닌데, 본인이 느끼기에 팀에서 홈런을 바란다고 생각해서 무너진 경향이 있었다. 디아즈한테도 우리 팀에서 홈런만 기대하는 게 아니라 우리 타선이 괜찮으니까. 좀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걸어나가고, 주루를 하면서 또 밸런스가 잡힐 수도 있다. 나쁜 공에 손을 대지 말고 볼넷 나갈 때는 확실히 나가주고, 중요할 때 홈런이 중요한 게 아니라 타점과 안타가 중요할 때도 있다. 큰 것만 쳐서 팀에 도움이 되느냐에 관해서 심리적인 점을 많이 이야기해 주려고 했다. 그때부터 본인이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면서 볼넷으로 나가고, 밀어치는 타격을 하고, 타격 페이스가 올라오면서 지금까지 꾸준하게 온 것 같다"고 했다.
디아즈는 슬럼프가 와도 깊이 빠지지 않는 게 큰 장점이다. 방출설이 돌았던 기간이 민망할 정도로 디아즈는 4월 이후로는 이렇다 할 부침이 없었다.
박 감독은 "슬럼프가 시즌 초반에 조금 길긴 했지만, 그 이후에는 2~3경기 못 쳐도 다음부터는 자기 페이스를 찾았다. 타자로서 슬럼프를 어떻게든 빨리 극복하면서 그 기간을 짧게 해야만 1년 안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디아즈는 안 좋은 경기 수가 많지 않아서 (슬럼프가) 느껴지지 않는다. 안 좋을 때도 중요한 안타는 하나씩 쳐 주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따지면 슬럼프가 없는 느낌도 받는다"며 "시즌 초반 여러 소문이 많았는데, 그걸 본인이 이겨냈고 또 살아나서 지금 팀을 구해내고 있는 상황이다. 타선에서 해결사 역할을 하면서 홈런이 경기가 넘어갔을 때 나오는 것보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필요로 할 때 영양가 잇는 홈런을 쳐주면서 좋은 팀 타격 리듬을 잘 잡아주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원=김민경기자 rina113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