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눈물로, 사적지에서 다짐으로…80년 전의 함성에 답하다
(시안=연합뉴스) 한종구 기자 =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고국의 흙과 명주에 그린 태극기 한 점을 항상 지니고 다닙니다."
무대 위 배우의 목소리가 떨리자 객석은 숨소리조차 멎은 듯 고요해졌다.
지난 19일 중국 산시성 시안의 시안개원대극장.
임시정부 수립 해인 1919년을 기념해 오후 7시(19시) 19분에 맞춰 막이 오른 뮤지컬 '아리랑-승리의 노래'는 관객들을 단숨에 80여년 전 독립 투쟁의 한복판으로 이끌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광복 80주년을 맞아 기획한 이번 공연은 1939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서 활동했던 한유한(한형석) 선생이 제작한 최초의 항일 가극 '아리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원작은 고향을 등지고 중국에서 항일투쟁에 나선 부부의 희생을 그린 음악극이었다.
무대는 광복군의 고단한 삶을 비추다가도 희망의 노래가 울릴 때면 다시 뜨겁게 타올랐다.
배우 박유겸은 예술선전조장 '정유강' 역으로 분노와 열정을 폭발시켰고, 배우 한정우는 동료들을 하나로 묶는 선전대장 '한정운' 역으로 절제된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무대와 객석을 오가는 노래와 대사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광복군들의 고단한 숨결을 전하는 메시지였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자취를 쫓아 난징, 충칭, 청두의 독립운동 사적지를 돌아본 '국외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적지 탐방단'도 이날 시안에 도착해 교민들과 함께 뮤지컬을 관람했다.
특히 원작 '아리랑'을 만든 음악가이자 독립운동가 한유한 선생의 아들 한종수 선생이 탐방단과 함께 무대를 지켜보며 감회를 나눴다.
그는 공연이 끝나자 깊은 숨을 고른 뒤 "만감이 교차한다"며 "이런 공연이 계속 이어져 많은 이들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게 되기를 바란다"고 짧게 소회를 밝혔다.
선친의 음악이 80년 세월을 넘어 다시 울려 퍼진 순간 그의 눈가에는 이내 뜨거운 눈물이 맺혔다.
시안은 진시황의 병마용으로 유명한 관광도시지만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던 곳이자 제2지대가 주둔했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다시 울려 퍼진 '아리랑'은 단순한 예술 공연을 넘어 조국 광복을 향한 치열한 발걸음을 오늘 세대에게 각인시켰다.
막이 내린 뒤에도 객석은 한동안 술렁이지 못한 채 침묵에 잠겼다.
눈시울을 훔치던 탐방단원들은 입을 모아 다짐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어가겠습니다."
김희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장은 "이번 뮤지컬을 통해 항일 독립 투쟁에 몸 바친 선열들을 기억하고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연에서 느낀 벅찬 감정은 이튿날 곧바로 시안 시내의 독립운동 사적지 답사로 이어졌다.
시안 시내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사특파단 활동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터,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본부 터가 흩어져 있다.
80여년 전 조국 독립을 위해 청년들이 드나들던 건물은 지금 안내판 하나 없이 말 그대로 '터'만 남아 있었다.
화려한 네온사인 뒤편에 밀려난 공간은 과거의 뜨거운 역사를 더욱 쓸쓸히 만들었다.
차로 30분 거리의 광복군 제2지대 기념비 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단원들은 공원 입구에 추모 화환을 놓고 묵념했다.
탐방단을 이끈 홍소연 선생은 "광복군은 제5지대까지 있었지만, 우리가 바로 제6지대라는 생각으로 살아가자"고 제안했다.
그 순간 탐방단의 공식 명칭은 '광복군 제6지대'가 됐다.
청년들은 광복군이 OSS(미국 전략사무국) 훈련을 받았던 성화촌 미타고사도 찾았다.
이곳에서 광복군은 산악 훈련 등을 받으며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했다.
그러나 1945년 8월 훈련을 마치고 진공을 추진하려던 순간 일본의 항복 소식이 들려왔고, 대원들의 바람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멈췄다.
지금은 산사 뒤편 남오대산으로 오르는 길조차 막혀 있었다.
미타고사 앞에 선 탐방단은 "승리를 눈앞에 두고 좌절해야 했던 선열들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다"며 숙연히 고개를 떨궜다.
뮤지컬 무대에서 마주한 뜨거운 감정과 사적지에서 느낀 차가운 현실은 교차하며 더 깊은 울림을 남겼다.
무대가 선열들의 노래를 다시 불러냈다면 사라져가는 사적지는 오히려 말 없는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어떤 세대인가, 그리고 무엇을 이어가야 하는가."
닫힌 대문 앞에 화환을 내려놓고 묵념하던 순간 청년들은 스스로를 '한국광복군 제6지대'라 불렀다.
선열들이 걸어가지 못한 길을 잇겠다는 고백이었다.
화려한 번화가 속에 묻힌 흔적과 미완으로 끝난 국내 진공작전.
그 모든 빈자리는 오늘의 세대에게 채워야 할 과제로 다가왔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발길을 시작한 이번 중국 대륙 답사는 그래서 단순한 과거의 되새김이 아니었다.
무대 위 노래가 마음을 흔들었듯 사적지의 침묵은 청년들의 가슴에 무거운 책임감을 새겨 넣었다.
역사가 멈춘 자리에서 이어진 다짐은 결코 허공에 흩어지지 않았다.
광복 80주년, 중국 대륙을 따라 걸었던 7박 8일간의 임시정부로의 여정은 여기서 끝이 났다.
하지만 그 길을 걸은 청년들의 눈빛과 다짐은 끝나지 않았다.
막이 내린 뒤 객석을 가득 메운 울먹임처럼 그 다짐은 지난 여정을 되새기며 미래를 향한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jkhan@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