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한동훈 기자] 실망할 필요 없다. 졌지만 잘 싸웠다. 83번이나 이긴 팀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화 이글스의 우승 도전이 143번째 경기에서 좌절됐다. 한화는 1일 인천에서 열린 2025 KBO리그 SSG 랜더스와의 경기에서 5대6으로 졌다. 1위 LG와의 승차가 1.5경기로 유지되면서 역전 가능성이 사라졌다.
기대가 컸으니 허탈감도 클 법하다. 한화는 9회까지 5-2로 리드했다. 이대로 끝났으면 LG를 승차 0.5경기로 바짝 추격한다. 3일 수원 KT전까지 이기면 LG와 동률, '1위 결정전'이 열린다. LG가 매직넘버를 3으로 줄인 채 대전 원정을 왔던 9월 26일만 해도 불가능한 시나리오로 여겨졌다. 그런데 그 기적이 눈앞까지 왔다가 사라졌다. 2등에 대한 성취감보다 1등을 놓친 좌절감에 휩싸일 수 있다.
하지만 한화는 정말 잘 싸웠다. 시즌 전 5강권으로 분류됐던 전문가 예상을 보란듯이 뒤엎었다. 외국인 원투펀치 폰세와 와이스의 역할이 컸다고 해도 국내선수들이 성장해준 덕분에 가능했던 돌풍이다. 2023년 신인 문현빈이 이제 리그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하지 않은 외야수로 발돋움했다. 2022년 신인 문동주는 10승 투수(11승 5패)가 됐다. 2023년 전체 1번 김서현은 마무리 보직 첫 해에 33세이브나 수확했다. 블론세이브도 4개 밖에 되지 않았는데 하필 이날 나왔다.
2013년 암흑기를 탈출한 LG가 떠오른다.
LG는 2002년 한국시리즈를 끝으로 10년 동안 가을야구에 실패했다. LG는 2013년 마치 올해의 한화처럼 신바람을 일으켰다. 74승 54패 승률 0.578로 정규리그 2위에 올랐다. 당시 LG도 9월 한때 선두를 탈환하며 '삼성 왕조'를 위협했다. 이 시즌 순위 싸움도 역대급이라 불릴 만큼 치열했다. LG의 2위도 시즌 최종전에 결정됐다.
2013년 10월 5일 LG는 플레이오프 직행을 확정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 때 삼성을 지휘했던 류중일 감독이 훗날 LG의 사령탑으로 취임했다. 류중일 감독은 이날을 회상하며 "LG가 우승을 했는줄 알았다"며 웃었을 정도였다.
LG는 비록 이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업셋을 당해 한국시리즈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암흑기를 깨부순 첫 해로 기억되며 현재 강팀이 된 초석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LG는 암흑기 탈출까지 11년, 그리고 그후 우승까지 다시 12년이 걸렸다.
한화도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이미 '성공한 시즌'이라 평가해도 과하지 않다. 왜 1등을 못했느냐는 손가락질 보다 '압도적 2등'이라는 찬사와 응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동훈 기자 dh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