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네가 주전이니 큰 침대를 써라."
후배에 대한 작은 배려가 약 30년 후 엄청난 선물로 돌아왔다면.
LG 트윈스와 염경엽 감독은 죽다 살아났다. 다 잡은 것 같았던 정규시즌 우승. 하지만 마지막 3경기를 모두 지며 마지막 매직 넘버 1을 지우지 못했다.
그 사이 2위 한화 이글스가 힘을 냈다. 1일 SSG 랜더스전, 3일 KT 위즈전을 이기면 LG와 1위 타이브레이크를 치를 수 있었다.
첫 관문 SSG전을 이기는 듯 했다. 9회 2사 상황까지 5-2로 앞섰다. 마운드에는 마무리 김서현이 있었으니, 누구라도 한화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적같은 반전이 일어났다. 대타 현원회의 투런포.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신인 포수 이율예가 한화를 울리는 극적 역전 결승 투런포를 때려버렸다. 그렇게 LG 우승 확정이었다.
잠실에서 NC 다이노스에 지고 풀이 죽어있던 LG는 난리가 났다. 집에 가던 선수들이 돌아오고, 팬들과 함께 파티를 즐겼다. 염 감독은 "SSG가 도와줘 너무 고맙다"고 밝혔다. SSG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LG를 도운 셈이 됐다.
엄청난 승리를 이끈 후 2일 광주에 내려온 이숭용 감독. 이 감독은 염경엽 감독에게 연락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연락 안 주시던데"라고 말하며 웃었다. 염 감독이 공개적으로 SSG에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자, 이 감독은 염 감독과의 현역 시절 일화를 들려줬다.
두 사람은 1994년부터 2000년까지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염 감독이 3년 선배. 선수 시절은 두 사람이 조금 달랐다. 염 감독은 내야 수비와 주루 등 주로 백업 역할이었다. 파워 넘치는 타격이 일품이었던 이 감독은 주전으로 오래 뛰었다.
이 감독은 "염 감독님과 룸메이트를 오래 했다. 원정에 가면 숙소 생활을 같이 하는데, 한 호텔에 침대 크기가 달랐다"고 얘기를 시작했다. 보통 호텔들이 패밀리 트윈이라고 표기를 하는데, 넓은 더블 베드와 좁은 싱글 베드가 같이 있다.
선배가 넓은 침대를 쓰는 게 당연하던 시대. 이 감독은 "어느 날 방에 들어갔는데 좁은 침대에 계시더라. 나보고 '넌 주전 선수니 큰 침대에서 편히 쉬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 때부터 이 분과 오래오래 같이 야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오래 전 스토리를 소개했다.
그 때부터 친분을 쌓아 야구 얘기도 하고, 염 감독에게 묻고 배우는 사이가 됐다고. 이 감독은 "나는 염 감독님이 본격적으로 백업이 되는 과정에서, 어떤 준비를 하는지 다 봤다. 그 때부터 스톱워치를 누르며 시간 체크를 하고, 선수마다 분석을 철저히 하며 미래를 준비하시더라. 그 열정을 봤다. 그 모습을 보며 '훗날 어떤 일을 해도 성공하시겠다' 생각했었다"고 설명했다.
염 감독은 2023 시즌 통합 우승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사실상 LG와의 재계약이 확정됐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그 길에 SSG가 엄청난 도움을 줬다.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선배의 권위를 내려놓은 그 배려가 30년 만에 큰 보답으로 돌아왔다.
광주=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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