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보물 도자와 추사 김정희 '대팽고회' 등 40점 공개
외국인 갯즈비부터 운미 민영익까지…근대 수장사 흐름 한눈에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1876년 조선 개항 이래 많은 외국인 수집가가 조선의 미술품을 수집했다. 영국 출신 변호사 존 갯즈비(John Gadsby, 1884∼1970)도 그런 인물이었다. 그는 1911년 일본으로 건너가 주일영국대사관 법률자문관으로 근무하면서 고미술품 수집에도 열심이었다.
특히 그는 고려청자의 예술적 가치에 매료됐고 조선까지 직접 왕래하며 수집했다. 하지만 세계정세가 급변하고 태평양 전쟁 발발의 기운이 감돌자 그동안 모았던 수장품 처분에 나섰다. 이 소식을 들은 간송 전형필은 그의 수집품을 인수해 고국으로 들여왔다. 훗날 이들 작품 중 4점은 국보, 3점은 보물로 지정됐다.
간송미술문화재단과 간송미술관은 오는 17일부터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2025년 가을 기획전 '보화비장: 간송 컬렉션, 보화각에 담긴 근대의 안목'을 개최한다.
전시에서는 간송이 갯즈비를 비롯해 운미 민영익, 위창 오세창, 석정 안종원, 송우 김재수, 희당 윤희중, 송은 이병직 등 7인 수장가에게서 인수한 컬렉션 40점이 공개된다.
놓쳐서는 안 될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갯즈비가 수집했던 국보·보물 도자들과 이병직이 소장했던 추사 김정희의 글씨 '대팽고회'다.
고려시대에는 일상 속 여러 동식물의 형태를 본뜬 상형청자가 많이 제작됐다. 국보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은 그중에서도 드문 원숭이 형상의 고려청자다. 새끼를 품은 어미 원숭이의 모습을 형상화한 연적(硯滴)으로 어미 원숭이의 얼굴이 섬세하게 묘사돼 있다.
기린이 조각된 뚜껑이 있는 '청자기린유개향로'와 오리 모양의 '청자오리형연적', 목이 긴 형태의 정병인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도 국보로 지정된 작품이다.
또 국화와 연화문이 새겨진 '청자상감국화모란당초문모자합'(보물)과 화병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음각환문병'(보물), 고려시대 흔치 않던 백자인 '백자박산향로'(보물) 등 보물 작품도 볼 수 있다.
역시 보물로 지정된 '대팽고회'는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던 해에 남긴 절필작이다. 김정희는 1856년 10월 10일 숨을 거뒀는데 이 작품은 그해 8월쯤 쓴 것으로 추정된다.
글은 명말 청초의 명사인 동리 오종잠의 시 '중추가연'을 쓴 것으로 추사체의 진면목이 함축된 작품이다.
이 밖에도 단원 김홍도가 그린 산수화를 모은 화첩 '단원산수일품첩'과 겸재 정선이 금강산의 다양한 경관을 담은 '금강산 팔폭' 중 네 폭의 족자도 만날 수 있다.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간송이 활동하던 시기 고미술 유통 구조와 수장사의 한 흐름을 보여준다"며 "간송이 당대 수장가들의 컬렉션에서 민족적 정수라 여긴 작품을 선별 수집한 과정을 조망해 간송 컬렉션 형성의 다층적 배경을 조명한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11월 30일까지.
laecorp@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