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이로운 없었으면 우리가 3위도 못했어!"
패전 투수의 퇴근길에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SSG 랜더스의 가을이 이렇게 끝났다. SSG는 14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2대5로 무릎을 꿇었다.
1차전에서 미치 화이트의 예상 밖 부진과 타선 불발로 패하고, 2차전에서 김성욱의 끝내기 홈런으로 기사회생했던 SSG는 적지 대구에서 한경기도 이기지 못하고, 3,4차전을 내주며 탈락이 확정됐다.
그 패배를 확정한 경기에서 21세 필승조 불펜 요원 이로운은 패전투수가 됐다. 0-2로 끌려가던 SSG가 8회초 상대 불펜을 흔들었고, 박성한의 드라마틱한 2타점 적시타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2-2 동점을 만든 SSG는 추가점은 내지 못한 채 8회말 수비에 들어갔다.
8회말 삼성의 상위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면 9회초 마지막 공격 때 다시 희망을 걸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SSG 벤치가 8회말 선택한 투수는 이로운. 이번 시리즈 1~4차전 전 경기 등판 중이었던 이로운은 2아웃을 잘 잡고 난 뒤 구자욱 타석부터 흔들렸다.
전날 구자욱과 17구 접전을 펼치며 KBO 신기록까지 세웠던 상대. 의식한 탓인지,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내보냈다.
다음 타자는 르윈 디아즈. 디아즈와 변화구 승부를 선택한 이로운은 2B1S에서 4구째 체인지업이 가운데 몰리며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투런 홈런을 맞았다. SSG의 모든 선수들이 얼음 처럼 굳어버린 순간. SSG 입장에서는 이로운을 내고도 추가 실점을 막지 못한 게 뼈아팠고, 이로운 입장에는 승부에 대한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을 장면이다.
이로운은 다음 타자 이재현에게 백투백 홈런까지 맞고 결국 마운드를 내려왔다. 얼굴이 벌게진 채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남은 경기를 지켜봤다. 그리고 SSG는 이기지 못하고 2대5로 패했다.
경기가 끝난 후 SSG 선수단은 짧은 선수단 미팅을 마치고, 짐을 챙겨 선수단 버스 탑승을 위해 차례로 움직였다. 간단한 재정비를 마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 시리즈 탈락의 잔상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채 무거운 걸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원정 응원석 한 블럭을 가득 메웠던 SSG 팬들. 곧바로 귀가하지 않고, 선수단 버스가 보이는 2층 난간에 서서 이 모습을 지켜봤다.
이로운이 나오자 많은 팬들이 박수 갈채를 보냈다. 응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버스에 짐을 싣던 이로운도 팬들을 향해 세차례 고개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고 탑승했다.
입단 3년 차인 올해 비로소 만개하며 정규 시즌 75경기를 던진 어린 투수. 6승5패 33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1.99. 30개가 넘는 홀드와 1점대 평균자책점, WHIP 1.06의 성적으로 20대 초반 리그 불펜 투수들 가운데 가장 빼어난 수치를 기록했다. 이숭용 감독이 준플레이오프 4경기 내내 이로운을 선택한 배경도 결국 이로운이 정규시즌에 얼마나 큰 믿음을 주는 투수였는지 결과로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비록 쓰라린 패배와 눈물을 실감했지만, 이로운에게는 더 많은 깨달음을 얻었던 첫 가을야구였다.
대구=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