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텀블러로 대표되는 다회용기를 쓰는 사람은 통상 친환경적인 삶을 사는 의식 있는 소비자라는 인상을 준다. 한때 텀블러 이미지로 대중에게 각인된 사람 중에 조국 조국혁신당 비대위원장이 있다. 그는 2019년 8월 12일 당시 문재인 정부 법무부장관 후보 지명자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텀블러를 들고 나타나 주목받았다. 처음 든 텀블러는 회색빛이었고 다음날 출근길에 든 텀블러는 빨간색이었다. 그다음 날 그의 손에는 흰색 텀블러가 들려 있었다. 텀블러는 그의 출근길 트레이드 마크가 되다시피 했다. 이런 모습이 그 당시 젊고 참신한 '조국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한몫했다.
텀블러는 때론 정치인들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결과를 낳은 소품이 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일회용 컵을 안 쓰려는 소소한 마음에 갖고 다닌다. 그러다 보면 개인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주곤 한다. 젊으면서 환경주의자라는 인상을 주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 텀블러 사용이 한동안 유행했으나 요즘은 예전 같지 않다. 그렇지만 집에 있는 텀블러 수는 분명 늘어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실 의뢰로 이달 초 18세 이상 1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6.7%가 텀블러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그중 83.8%가 2개 이상을 갖고 있었고, 4개 이상인 사람도 28.3%나 됐다.
정부와 지자체, 기업 등에서 텀블러를 기념품 용도로 많이 만들기도 했다.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하는 사회 분위기 영향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커피 산업이 급성장한 영향도 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부 부처에서 2020년부터 5년간 텀블러 구입에 쓴 예산이 71억여원에 달하고 수량으로는 41만8천여개에 달한다고 한다.(김소희 의원실 자료) 젊은 층에서 텀블러를 개성 표현이나 패션 아이템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애장 수집품이 된 측면도 텀블러 확산에 영향을 줬다.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다양하고 참신한 텀블러를 계속 생산해온 점이 젊은이들의 수집 요구를 자극한 측면이 있다.
커피 프랜차이즈 1위 스타벅스는 2022년부터 3년간 587종의 텀블러를 만들었다고 한다. 판매된 수량이 무려 948만개, 금액으로는 약 2천587억원에 달한다고 하니 놀랄만하다. 매월 다양한 디자인의 한정판 텀블러를 반복적으로 선보이며 마케팅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전체 매출에서 텀블러 판매 비중도 작지 않을 것 같다. 업체 측에서는 텀블러 판매만 한 것이 아니라 사용을 권장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고 한다.
텀블러가 그동안 많이 확산한 것에 비하면 요즘 주위에서 실제 사용하는 사람을 보긴 쉽지 않다. 가정이나 사무실에 방치돼 있거나 소장품으로 진열된 텀블러들이 상당수다. 이달 초 설문조사에서 텀블러를 사용한다고 응답한 사람도 1주일 기준 사용 빈도가 '3~4회'가 35.7%로 가장 많았고, '6회 이상' 33.0%, '1~2회' 31.3%로 나타났다. 스타벅스 고객만 봐서도 마찬가지다. 전체 고객 가운데 텀블러 할인 혜택(400원 할인)을 받는 고객은 5.2%에 불과하다고 한다.
지난 14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텀블러 문제가 거론됐다. 김소희 의원은 질의에서 "텀블러가 예쁜 쓰레기가 돼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로 텀블러 사용이 권장되지만 실제 환경 보호 효과가 있으려면 텀블러를 많이 써야 한다. 텀블러를 제조, 유통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가 일회용 컵에 비해 월등히 많다. 연구마다 조금 차이가 있지만 스테인리스 텀블러의 경우 최소한 50회 이상을 써야 일회용 컵보다 환경에 이롭다고 한다. 여러 개의 텀블러를 반복적으로 구매한 뒤 일부만 사용한다면 자꾸 '예쁜 쓰레기'만 만드는 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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