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 中)
한강은 지난해 12월 7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광주'를 이렇게 묘사했다.
광주는 계엄군에 맞서 마지막까지 민주주의를 지켜낸 곳으로 작가에게는 고향의 의미를 넘어 마음의 부채로 남아있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배경인 광주는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민주의 성지'에서 '문학의 성지'로 각인되고 있다.
한강의 부친인 한승원 작가의 고향인 전남 장흥도 탐방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광주시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소년이 온다' 등 인문 자산을 활용한 '책 읽는 도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한강의 생가(중흥동) 인근에 북카페 등을 조성하려 했으나 예산 문제로 추진을 못 하는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 '소년과 걷다'…소설 속 전남도청 등 5·18 사적지 도보 코스 인기
1980년 5월 전남도청을 사수하기 위해 모여든 시민군을 묵묵하게 지켜봤던 전일빌딩에 가면 한강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광주를 찾은 탐방객들은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가 걸었던 길을 함께 하며 역사적 의미를 되새긴다.
계엄군의 헬기 사격 흔적이 남아 있는 전일빌딩을 따라 옛 시민군의 마지막 항전지인 전남도청, 5·18 민주광장,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한강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이 담긴 전남대학교와 중흥도서관, 효동초등학교 골목길, 문화 사랑방 등을 따라가는 여정도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광주를 찾는 관광객도 늘었다.
지난 6월까지 광주를 방문한 관광객은 559만여명으로, 전년 동월 500만여명 보다 10.7%(54만여명) 증가했다.
5·18전야제 등 오월 기념행사가 열린 5월 관광객은 677만여명으로 전년 동월 569만여명 대비 19%(108만여명) 증가했다.
5·18 주간에 '소년이 온다'의 배경지 중 5·18 민주화운동 사적지를 중심으로 코스를 구성한 관광상품을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 전남 장흥도 축제 분위기…1주년 기념행사 '다채'
장흥에서는 이달 24∼25일 옛 장흥교도소를 리모델링한 '빠삐용zip'에서 도내 중학생 60명과 문학인이 참여해 문학 치유와 창작을 체험하는 북캠프가 열린다.
문학·여행·체험 콘텐츠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문학 포레스트와 전남 콘텐츠 페어 행사는 이달 31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사흘간 탐진강변과 빠삐용zip에서 열려 지역주민·관광객들과 만난다.
장흥 문학의 권위와 특별함을 담아 수여하는 장흥문학상 시상식도 11월 12일 열린다.
정남진도서관은 11∼12월 한강 작가 책 읽기 캠페인을 마련해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고 감상을 나누며 문학의 가치를 되새긴다.
문학 릴레이 행사의 마지막은 오는 12월 10일 노벨문학상 수상 1주년 기념식으로 마무리된다.
장흥 출신 소설가 한승원의 딸인 한강 작가가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장흥을 찾는 문학 탐방객이 전년 대비 약 4배 증가하기도 했다.
◇ 생가 활용한 문화사업 예산 문제로 '발목'…문학 도시 조성 과제도
광주시는 한강 작가 생가(중흥동) 인근에 '골목길 문화사랑방 조성사업'을 추진했다.
북카페를 만들고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과 광주 문학을 기념하는 관광명소를 만들 계획이었다.
해당 부지는 4억8천만원을 들여 매입했다.
시는 올해 말 개관을 목표로 했으나, 시의회의 반대로 발이 묶였다.
광주시는 관련 예산 10억5천만원을 추가경정예산안에 포함해 지난 6월 광주시의회에 제출했지만, 의회는 사업의 실효성과 차별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이명노 광주시의원은 "전국 지자체가 천편일률적으로 한강의 도시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 급급한 상황"이라며 "광주시는 보다 깊은 고민과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해당 사업은 전면 중단됐고, 매입한 부지는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고 방치된 상태다.
광주시 관계자는 "매입 부지를 보다 더 실효성 있게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겠다"며 "인문학 산책길 사업과 연계해 산책길 코스에 편입시키는 등 대안을 마련해 사업을 다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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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