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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관에 갑옷·투구까지…1천600년 전 '신라 장수' 무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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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경주 황남동서 4세기 말∼5세기 전반 축조 무덤 발굴
쪽샘 C10호 무덤 이어 말 갑옷 나와…'중장기병' 연구 도움 될까
'30세 전후 추정' 무덤 주인 곁에는 순장 흔적…"당대 최상위 신분"

(경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약 1천600년 전 말을 타고 군대를 호령하던 신라의 젊은 장수(將帥)가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확인됐다.
사람과 말 갑옷은 물론, 무덤 주인의 신분을 엿볼 수 있는 유물도 출토돼 주목된다.
국가유산청과 경북 경주시는 경주 황남동 120호 무덤 일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4~5세기경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을 새롭게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국가유산청은 "무덤에서 출토 유물, 부장 양상 등을 고려할 때 당대 최상위 신분의 신라 장수로 일정한 정치적 역할까지 수행한 인물의 무덤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경주 대릉원 일원에 있는 황남동 120호 무덤은 일제강점기에 그 존재가 알려졌으나, 이후 민가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훼손됐고 서서히 잊혔다.
국가유산청과 경주시는 2018년부터 일대를 발굴 조사해 북쪽에 위치한 120-1호 무덤과 남쪽의 120-2호 무덤을 추가로 확인했고, 다양한 유물을 찾아낸 바 있다.
이번에 조사한 무덤은 120호 무덤의 북쪽 호석(護石·둘레돌) 부근에서 발견됐다.
무덤은 나무로 짠 곽 안에 널과 부장품을 안치하는 덧널무덤(목곽묘) 형태로,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 형태인 120호 무덤 아래에 있었다.

봉분은 동서로 10.6m, 남북으로 7.8m 규모로, '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로 이름 붙었다.
발굴 조사를 담당한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측은 신라 고분의 변천 과정, 출토된 유물 등을 고려할 때 이 무덤이 4세기 말에서 5세기 전반에 축조된 것으로 봤다.
연구원 측은 "신라의 무덤 양식이 목곽묘에서 적석목곽분으로 변화하는 전환기적 요소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올해 3월 말부터 조사한 결과, 무덤에서는 총 165점의 유물이 나왔다.
무덤 주인이 묻힌 주곽에서는 생전 착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귀걸이 1쌍과 고리 자루가 붙은 큰 칼(環頭大刀·환두대도), 치아 조각 등이 발견됐다.
목걸이나 허리띠 장식 등 화려한 장신구 종류는 나오지 않았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치아 조각은 무덤 주인의 머리 부분에서 여럿 확인됐는데, 제2 소구치의 마모 상태를 볼 때 30세 전후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무덤 주인이 있던 공간 위쪽에서 찾은 금동 판 조각은 눈여겨볼 만하다.
주곽의 부장칸에서는 '△' 또는 '凸' 문양을 투조(透彫·소재의 면을 도려내어 문양을 나타내는 금속공예 기법)한 조각 여러 점이 나왔다.
이 문양은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集安) 지역에서 출토됐다고 전하는 고구려 금동 장식,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모관(帽冠·머리 위에 올려 쓰는 모자 형태의 신라관)과 비슷하다고 국가유산청은 전했다.
금관을 비롯한 금 공예품 전문가인 김재열 국가유산진흥원 파트장은 "황남동 1호 무덤에서 나온 조각은 형태, 문양 등으로 볼 때 (금동) 모관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과 연구원은 이 조각이 금동관의 일부일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원 관계자는 "현존하는 신라 왕경 발굴품 중 가장 오래된 금동관"이라며 "4세기 말∼5세기 전반 '신라 황금 문화'의 금공 기술과 장신구 초기 형태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무덤 주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려주는 '힌트'도 발견됐다.
주곽에 딸린 매장시설인 부곽에서는 말과 사람 갑옷과 투구, 안장, 등자, 재갈 등 말과 관련한 다양한 유물이 발견됐다. 말이 착용하는 갑옷인 마갑(馬甲)이 나온 건 경주 쪽샘지구 C10호에 이어 두 번째다.

학계 안팎에서는 중무장하고 말을 타고 싸우는 무사 즉, 신라 중장기병(重裝騎兵)의 실체와 역사를 밝혀낼 자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국가유산청은 "신라 고분에서는 두 번째로 발견된 것으로, 중장기병의 실체와 함께 5세기 전후 신라의 강력한 군사력과 지배층의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사람 갑옷의 경우, 모든 부분을 철로 만든 게 아니라 일부를 가죽으로 제작했으며 팔과 다리를 보호하는 부속 갑옷 일체가 모두 갖춰져 있어 눈길을 끈다.
성능이 좋고, 가벼운 갑옷을 입을 정도로 소유자의 신분이 높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보여주듯 말 갑옷과 사람 갑옷이 발견된 지점에서는 팔다리를 모두 벌린 모습의 순장자 흔적도 확인됐다. 무덤 주인을 가까이서 보좌한 시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유산청은 "최상위 계층 무덤에서 그동안 추정하거나 일부만 확인됐던 순장자 인골 전신 자료를 처음으로 확인했다"며 "장례 풍습 연구에 있어 실증적 자료"라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은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맞춰 이달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엿새 간 발굴 조사 현장과 유물 일부를 공개할 예정이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이번 조사는 새로운 무덤을 발견한 것을 넘어 고대 신라의 군사 ·사회 구조를 밝히는 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yes@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