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지난해 괴한에게 염산 테러를 당한 말레이시아 국가대표 공격수 파이살 할림(27·셀랑고르)이 19개월만에 국가대표팀에서 복귀포를 쏘며 축구팬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파이살은 2024년 5월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외곽 지역의 한 쇼핑센터에서 괴한에게 염산 테러를 당해 어깨, 손, 가슴 등에 4도 화상을 입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사고다. 파이살의 국가대표팀 동료인 아크야르 라시드가 자택 인근에서 강도 상해 피해를 입은 지 사흘만에 자행된 테러로, 말레이시아 국대 선수를 타깃으로 삼은 것으로 여겨졌다.
평범했던 일상이 악몽으로 변했다. 파이살은 화상을 입은 부위에 총 네 번의 수술을 받고 며칠간 중환자실 치료를 받았다. 이로 인해 한 동안 제대로 말을 하지도, 걷지도 못했다. 두 달 넘게 축구공을 만지지 못했다. 이 공격으로 그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얼굴에는 그날의 참혹함을 엿볼 수 있는 흉터가 남았다.
파이살은 지난 6월 영국공영방송 'BBC'와의 인터뷰에서 "계속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정말 힘들었다. 사기도 떨어졌다. 많은 것이 변했다. 이젠 제대로 웃을 수 없다"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두려움 때문에 축구를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매일 수많은 전화와 메시지를 받았다. 병원에 있는동안 아내가 팬들의 메시지를 읽어주곤 했다. 말레이시아의 온 국민이 나를 위해 기도해준 덕에 다시 뛸 용기를 얻었다"라고 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파이살은 "이젠 외출하지 않는다. 훈련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아내, 아들,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라고 달라진 일상을 전했다.
파이살은 사고가 일어나기 불과 3개월 전인 2024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린 2023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손흥민이 이끄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자신의 커리어 사상 가장 큰 골을 넣었다. 그는 페널티 박스 안에서 공을 잡아 바이에른 뮌헨 센터백 김민재와 울산 골키퍼 조현우를 제치고 좁은 각도에서 슛을 쏴 골망을 갈랐다. 김판곤 감독이 이끌던 말레이시아는 한 수 위 전력을 지닌 한국과 3대3으로 비기는 이변을 연출했다.
파이살은 피나는 재활과 개인 훈련 끝에 그해 8월 말레이시아 FA컵 준결승전 엔트리에 포함되며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그리고 지난 3월 네팔과의 아시안컵 예선에 교체 투입으로 A대표팀에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같은 달 켈란탄 다룰 나임과의 경기에서 득점 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시우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부활'을 알렸다.
그리고 지난 14일 라오스와의 아시안컵 예선 홈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5대1 역전승의 발판을 놨다. 그림같은 프리킥으로 아시안컵 한국전 이후 19개월만에 A매치 17호골을 넣었다.
말레이시아 매체 '프리말레이시아투데이'는 '파이살의 라오스전 프리킥은 단순한 골을 넘어 냉소주의에 대한 설교였다. 다른 나라였다면 이 이야기는 신화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스폰서십, 슬로건처럼 말이다. 말레이시아에선 곧 (이러한 이야기가)사라지겠지만, 그는 그의 존엄성이 손상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아름다움이 상처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음을 증명했다. 파이살이 아시아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없을지 모른다. 심지어 말레이시아 최고의 선수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 10월의 밤, 파이살은 절망에 맞서 승리했기 때문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