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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샷!] "지금이 최악인 것 같다.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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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에 아우성…"아이들 용돈까지 줄이는 상황"
수입상들 "해외 송금액 거의 15% 정도는 오른듯"
유학생 부모들 "허리띠 졸라매는 것밖에 할수 없어"
은행 "앱으로 환전하는 게 가장 유리"

(서울=연합뉴스) 최혜정 인턴기자 = "작년이랑 완전 딴판이네요. 너무 비싸서 바꿀 엄두가 안 납니다."
지난 26일 오후 명동역 인근 KB국민은행 앞. 황은아(65) 씨는 다음 주 대만에서 열리는 회사 10주년 컨벤션을 앞두고 원화를 대만달러로 환전하러 왔다가 발길을 돌렸다.
고환율로 인한 원화 약세 탓에 예정보다 몇만 원 높은 금액이 필요해지자 결국 계획을 포기하고 다른 은행과 비교하기 위해 돌아섰다.
황씨는 "고환율 얘기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며 "정부가 좀 조정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환율 상황이 이어지면서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터진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24일 종가 기준 1천477.1원까지 올라 올해 4월 9일(1천484.1원) 이후 7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환율은 쉽게 낮아지지 않고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고환율 여파는 환전소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났다.
남대문 인근 A 환전소 주인은 "내국인 환전 수요는 많이 줄었고 경기 침체 영향도 크게 느껴진다"며 "반면 관광객은 예전보다 확실히 늘었고 달러·엔화·유로 등 다양한 통화를 들고 온다"고 말했다.
원화 약세가 내국인의 외화 환전 부담을 키운 반면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인터뷰를 하는 10분 동안 이 가게를 방문한 고객들은 모두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근처 B 환전소 주인도 "외국인 관광객들의 수요는 일정한 편"이라고 말했다.
이 환전소 앞에서는 환전을 마친 외국인 관광객들이 원화 지폐 개수를 꼼꼼히 세고 있었고, 그 사이로 캐리어를 끌고 온 다른 관광객들이 줄지어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등 분주한 모습이 이어졌다. 내국인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부 시민은 불안 심리에 달러 매수에 나서기도 한다.
남대문 인근 환전소 '주식회사 서울상역'을 운영하는 정모 씨는 "환테크 목적의 고객 중에는 '달러가 더 오를 것 같다'며 추가로 사러 오는 사람도 있고, 팔러 오는 사람도 전부 팔지 않고 일부만 매도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어 "금리 인하 발표에 정부 개입까지 해도 환율이 크게 출렁이니 손님들 불안이 더 커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인근 수입상가 상인들은 생계가 걸린 문제라 특히 더 힘들어한다"며 "서로 '지금은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고환율은 특히 수입에 의존하는 소상공인들의 생계를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같은 날 남대문 수입상가는 가게마다 진열대에 상품이 빼곡히 놓여 있지만 손님은 찾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주얼리 가게를 운영하는 남영(48) 씨는 "겨울철 들어 환율이 꾸준히 오르면서 상황이 계속 나빠지고 있다"며 "수입 상품이라 환율 영향을 크게 받다 보니 실제 수입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이어 "말그대로 남는 게 없어서 생계에도 부담이 크다"며 "정부 차원에서 어떤 대책이라도 해 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또 잡화점을 운영하는 김종덕(57) 씨는 "해외로 송금하는 금액이 거의 15% 정도는 오른 것 같다"며 "최근 중국 거래처에서도 '한국 괜찮냐'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편의점·공항 납품은 가격을 함부로 못 올려 마이너스가 날 때도 있다"며 "아이들 용돈까지 줄이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안경점을 운영하는 김모(63) 씨 또한 "해외에서 들여오는 부자재 가격이 계속 오르는데, 판매가를 크게 못 올리니 실제 소득은 줄었다"며 "내수도 안 좋은데 환율까지 올라 더 힘들다"고 밝혔다.

유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도 냉가슴을 앓고 있다.
아들과 딸을 각각 미국과 독일로 유학 보낸 부산 주민 김모 씨는 27일 "성악과 건축 전공인 딸과 아들의 꿈을 위해 유학을 보냈는데 날로 치솟기만 하는 유로화, 달러화 환율을 보면 부모로서 무능함을 느끼게 된다"며 "늘 아껴 쓰라는 말밖에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토로했다.
세 자녀를 뉴욕과 애틀랜타에서 유학시키고 있는 또 다른 김모 씨는 "10년째 유학자금을 송금 중인데 지금이 최악인 것 같다. 너무 힘들다"고 밝혔다.
아들이 뉴욕에서 유학 중인 이모 씨는 "이젠 환율 체크 안 한다. 아무 생각이 없다"며 "어쩔 수 있나.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 외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들은 환전을 '앱'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저렴하다고 안내한다.
기업은행 명동역점 직원은 "앱에서 '환전 지갑'을 쓰면 신청 시점 우대가 바로 적용된다"며 "큰 금액은 앱으로 여러 번 하는 게 제일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하나은행 명동역점 직원 또한 "지점 방문보다 앱으로 환전 신청하고 현찰만 찾아가는 방식이 사실상 가장 베스트"라며 "큰 금액을 들고 나간다면 송금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haemong@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