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다음 달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반헌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년이 되는 날입니다. 느닷없는 한밤의 계엄 선포는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것은 물론 헌정사에 큰 오점을 남기고 국격 추락까지 불러왔습니다. 하지만 시민의 저항과 국회의 발 빠른 대응으로 6시간 만에 계엄 해제를 끌어내며 빛나는 K-민주주의의 저력을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연합뉴스는 계엄 극복 과정과 시민의 역할, 공모자 단죄 상황, 전문가 진단 등 기획기사 6꼭지를 일괄 송고합니다.]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5분께,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긴급 담화는 연말을 맞아 차분히 한 해를 정리하던 시민들의 평온한 일상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2024년에 등장한 계엄이란 단어의 의미를 곱씹기도 전에 '정치활동 금지', '언론·출판 통제', '처단' 등 역사 속에 파묻혀 있어야 할 망령 같은 말들이 '계엄사령관 포고령'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하는 듯했다.
이어 총기와 방탄 헬멧, 야간 투시경으로 무장한 계엄군이 군용 버스와 트럭, 헬리콥터를 타고 국회로 들이닥쳤다.
4일 새벽 0시 7분께 국회 경내로 들어선 계엄군은 국회의사당 현관을 통한 진입이 여의치 않자 망치와 소총으로 유리창을 깨고 0시 45분께 본청으로 침투했다.
계엄군 앞에 남은 장애물은 이제 국회 관계자들과 보좌관이 급히 쌓아 올린 바리케이드와 소화기뿐이었다.
다행히 계엄군의 총칼에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비극은 거기까지였다.
계엄군이 로텐더홀 바로 앞까지 다가온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져 통과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가결을 선포한 시각은 새벽 1시 1분이었다.
경찰의 봉쇄를 뚫고 담을 넘어 본회의장으로 달려온 야당을 중심으로 한 190명의 여야 의원이 표결에 참여했다. 반대표는 없었다.
헌법에 따른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공표되자 계엄군의 군홧발에서는 거짓말처럼 힘이 빠져나갔다.
계엄군은 1시 30분께 국회 경내 철수를 시작했고, 다시 2시간 만인 오전 3시 30분께 인근 주차장 등에서도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윤 당시 대통령은 계엄군이 모두 빠져나간 뒤로도 한동안 침묵하다가 새벽 4시 27분께가 돼서야 생중계 담화를 통해 계엄을 해제했다.
40여년 전으로 퇴행할 뻔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벼랑 끝에서 기사회생한, 기적 같은 6시간이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은 계속됐다.
12월 7일 국회의 첫 탄핵 표결을 앞두고 발표한 담화에서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힌 윤 전 대통령은 불과 닷새 만에 이를 뒤집었다.
그는 12일 29분간 발표한 담화에서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자 통치행위가 어떻게 내란이 될 수 있느냐"며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했다.
이틀 뒤인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후 담화에서도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민주주의에 맞서길 멈추지 않았다.
동시에 검찰·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경쟁적인 수사에 맞서 한남동 관저를 성채(城砦)로, 대통령경호처 경호관들을 사병(私兵) 삼아 '농성'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공수처·경찰과 경호처라는 국가기관이 정면충돌하는 아찔한 순간이 연출됐다.
현직 대통령이 적법한 영장 집행을 거부하는 초유의 상황은 강성 지지층을 자극하면서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태'로 비화했다.
올해 1월 19일 새벽 서부지법이 윤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흥분한 지지자들이 법원에 난입해 판사 사무실을 파손하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이 일로 수십 명의 청년이 재판에 넘겨졌다.
한국 사회는 수없이 흔들리면서도 위기를 끝내 극복해냈다.
국회는 두 차례 탄핵안을 발의한 끝에 윤 전 대통령을 탄핵 소추했고, 헌법재판소는 장기간 심리를 거쳐 4월 4일 재판관 만장일치로 파면 결정을 내렸다. 이후 조기 대선을 거쳐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공수처는 두 차례 영장 집행 시도 끝에 1월 15일 한남동 관저에서 윤 전 대통령을 체포해 구속했다.
윤 전 대통령은 3월 8일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52일 만에 석방됐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발족한 특검에 의해 7월 10일 다시 구속돼 재판받고 있다.
일련의 위기 극복의 과정은 대한민국이란 공동체가 축적해 온 저력을 보여줬다.
비상계엄이 선포되자마자 국회로 달려온 시민들은 계엄군에 맞서며 그들의 진입을 저지하는 데 힘을 보탰다.
집에 머물던 시민들도 유사시 '시대의 증인'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새벽까지 TV와 유튜브로 국회 상황을 시청하고 단체 대화방에서 상황을 공유했다.
항의하는 시민들 앞에서 얼굴을 가리며 소극적으로 행동하고, 철수하면서 고개 숙여 사과하던 계엄군 병사들의 모습에서도 헌법 가치를 체화한 '제복 입은 시민'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민하게 계엄 해제 표결을 통과시킨 국회, 진통 속에서도 만장일치 결정을 도출한 헌법재판소 등 주요 헌정 시스템도 굳건히 역할을 해냈다.
근현대사의 고비마다 '넥타이 부대'로, 또 '촛불 시민'이란 상징을 만들어 온 광장의 정치는, 이번에는 K팝 문화와 만나면서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들고 축제 분위기를 만드는 이른바 'K 민주주의'로 진화했다.
그러나 시민들이 보여준 저력과는 별개로, 비상계엄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의 기반이 여전히 취약하다는 점을 고스란히 노출한 사건으로도 볼 수 있다.
지도자 한 명의 잘못된 판단으로 민주화 이후 37년의 민주주의 역사가 단숨에 퇴행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울러 계엄에 가담한 일부 군·경 지휘관의 모습에서는 권력기관 내부에 정치 중립의 원칙이 아직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했음이 확인됐다.
12월 3일 밤,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역사의 톱니바퀴가 하나만 어긋났어도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여기에 서부지법 난동 사태는 정치적 진영 대결이 심화하면서 사회 분열도 위험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는 조기 대선으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 앞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첩첩이 쌓여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계엄 사태로 인한 민생 불안을 잠재우고 추락한 국격을 바로잡기 위한 경제·외교 활동에 총력을 기울였다.
코스피 급등과 2분기 국내총생산(GDP) 반등,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 등으로 계엄의 단기적 후폭풍은 벗어나는 모습이다.
지금은 불행한 사태의 반복을 막기 위한 심판의 시간이 지속되고 있다.
막바지를 향하는 3대 특검의 수사로 윤 전 대통령과 계엄 공모자들, 국정개입 의혹 등을 받는 부인 김건희 여사 등이 줄줄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르면 내년 1월부터 일부 피고인들의 1심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는 공무원 사회 내부의 계엄 잔재를 뿌리 뽑겠다며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 가동에 막 나섰다.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내란 청산'을 내걸고 검찰 및 사법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야당이 된 국민의힘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다시 한번 '탄핵의 강'을 헤쳐 나가는 것이 최대 과제이지만, 계엄 사태의 당사자인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도 머뭇대며 내부적인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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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