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꽃 보다 아름다운 이준호가 '태풍상사'의 처음과 끝을 꽉 닫았다.
tvN 토일드라마 '태풍상사'(장현 극본, 이나정·김동휘 연출)가 지난달 30일 '태풍 정신'을 되새기며 깊은 여운과 함께 막을 내렸다.
이날 방송에선 표현준(무진성)이 PMP 출시를 앞둔 외국 기업과 손을 잡고 다본테크 냉각팬 특허를 경매로 빼앗으려던 음모가 드러났다. 이에 다본테크와 태풍상사는 해당 기술을 모두에게 공개하는 상생의 결단을 내렸다. 강태풍(이준호)은 3,000만원에 공장을 낙찰 받아 다본테크 가압류를 풀었다. 표현준은 계획이 무산돼 가계약한 무역상선 대금 지급에 차질을 빚자, 표상선 건물 담보 대출과 태풍상사 폐업을 시도했다. 하지만 태풍은 다시 한번 '아스팔트 사나이'가 돼 표박호(김상호)를 구해냈고, 차용증을 돌려받은 그는 사장 자리로 복귀해 잘못 키운 아들을 배임, 횡령, 금융 거래 조작, 방화 혐의로 경찰에 고발, 긴급 체포가 이뤄졌다.
시간이 흘러 2001년, 대한민국은 IMF 체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함께 뭉쳐 그 시간들을 지나온 태풍상사 역시 활력을 되찾았다. 이곳에 자신의 꽃밭이 있다는 걸 깨달은 강태풍은 어엿한 '진짜 사장'이 됐고, 대학 졸업장 없어도 상사맨 일에 자신있는 오미선(김민하)은 커리어에 전력을 쏟아 과장이 됐다. 고마진(이창훈) 차장은 가족애, 동료애, 애국심으로 회사를 지탱했고, 돌아온 차선택(김재화) 부장은 여전히 컴퓨터보다 빠르고 정확한 주판 실력을 자랑했다, 창립 멤버 구명관(김송일) 상무는 '구관이 명관'답게 회사가 깊숙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묵묵히 뒷받침했고, 배송중(이상진) 과장 역시 X-세대의 트렌디하고 기민한 업무처리를 뽐냈다.
태풍상사 밖의 사람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다. 왕남모(김민석)는 오미호(권한솔)와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렸고, 정정미(김지영)는 미선이네와 한가족이 되어 오범(권은성)을 따뜻하게 품었다. 긴 어둠을 지나 위기의 시대를 견뎌낸 이들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새로운 내일을 향해 힘차게 걸어 나갔다. IMF를 살아낸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뜨겁게 되살린 '태풍상사'는 그렇게 사람이라는 꽃밭 안에서 가장 단단한 열매를 맺으며 막을 내렸다.
'태풍상사' 최종회 시청률은 전국 가구 평균 10.3%, 최고 11.4%, 수도권 가구 평균 10.7%, 최고 12.1%로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 지상파를 포함한 전채널에서 동시간대 1위에 올랐다. 2049 타깃 시청률 역시 전국 가구 평균 2.9%, 최고 3.3%, 수도권 가구 평균 2.6%, 최고 3.2%로 자체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며 지상파를 포함한 전채널 동시간대 1위를 수성, 유종의 미를 거뒀다. (케이블, IPTV, 위성을 통합한 유료플랫폼 기준 / 닐슨코리아 제공)
▶ "포기하지 않으면 뭐든 해낼 수 있다" IMF 청춘과 가장들이 끝내 지켜낸 '태풍 정신'
'태풍상사'를 마지막까지 관통한 메시지는 "포기하지 않으면 뭐든 해낼 수 있다"였다. 태풍은 숱한 위기 앞에 무너져도 직원들의 밥그릇을 책임지기 위해, 돈을 못 가져다줘도 매일 저녁상에 불고기를 올려주는 엄마를 위해, 26년 간 회사를 땀 흘려 키운 아버지를 위해, 다시 일어섰다. IMF로 대학 진학이 좌절된 미선은 상사맨이란 새로운 꿈을 붙들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정진했다. 남모는 집이 망해도 무너지지 않고 땀 흘려 돈을 벌었고, 미호는 승무원 채용이 취소됐지만 백화점 엘리베이터 안내양으로 일하며 언니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고 싶다는 일념으로 일터로 향했다. 태풍상사 직원들, 정미, 을녀(박성연) 역시 맞닥뜨린 현실은 다양했지만 각자의 하루를 묵묵히 버텨냈다. 그리고 이들이 끝까지 버티고 오늘을 살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언제나 곁에서 서로를 붙잡아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청춘과 가장들이 끝내 지킨 이 '태풍 정신'은 대한민국이 위기를 통과할 수 있었던 진짜 힘이었다. 그리고 2025년 현재 이 작품을 함께 본 누군가에게도 유의미한 의지와 위로를 불어넣는 에너지이기도 했다.
▶ 잊고 지냈던 90년대의 온기와 낭만
'태풍상사'가 담아낸 90년대는 단순한 복고적 재현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온기와 낭만을 그대로 옮겨오는 작업에 가까웠다. 당시의 공간을 그저 배경이 아닌 사람들의 삶이 오갔던 현장처럼 구현하기 위해 1997~8년의 서울과 부산을 미술로 정교하게 작업하는데 매진했다. 그 결과 출퇴근 시간마다 붐볐던 1호선과 을지로, 수출과 달러가 한곳에 모여 생동감을 자아낸 부산, 태풍과 미선이 살던 달동네 등 사람과 풍경이 어우러진 '살아 있는 90년대'가 드라마 속에 생생히 되살아났다. 또한 스쳐 지나가는 장면에서도 그 시대 공동체의 숨결을 살리고자 했다. 동네에 다니는 아이, 할머니, 강아지까지 화면 안에 자연스럽게 담아내며, 당시 골목이 지녔던 활기와 따뜻함을 그대로 담아냈다.
특히 드라마 전반에 등장했던 '꽃'은 그 시절을 채운 소박한 낭만을 가장 따뜻하게 비춰주는 장치였다. 원예학과 출신 태풍이 정성 들여 접목해 키우던 '강장미'를 비롯해, 정미와 미선에게 쥐어진 '강한 꽃' 코스모스, 삽다리물류 최사장(이도경)과 퇴직한 을녀에게 전해진 프리지아는 작은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담고 있었다. 야반도주한 친구 윤성(양병열)을 다시 만났을 때 태풍이 건넨 거베라는 열정과 부를 상징했고, 태국에서 미선에게 준 릴라와디는 '당신을 만난 건 행운입니다'라는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 여기에 백합은 명관을 존경하는 마음을 담았다. SNS도 없던 시절,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따뜻한 방식이었던 이 꽃들처럼 '태풍상사'는 잊고 지냈던 90년대의 낭만을 섬세하게 되살려냈다.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인류애·가족애·동료애·우정까지
누구도 완벽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붙들어 일으킨 순간 속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속에 담긴 의미가 현실로 피어났다. 잘 알지도 못한 슈박 사장 박윤철(진선규)이 목숨마저 잃을 위기에 처하자 내 일처럼 끝까지 도운 태풍과 정차란(김혜은), 야반도주한 친구 윤성에게 가진 것을 모두 털어 쥐여준 태풍, 그리고 첫 월급으로 가장 먼저 은혜를 갚으러 돌아온 윤성 등 이들의 연결은 피가 닿지 않아도 가족이 되는 공동체의 힘을 보여줬다. "너 있는 곳이 우리 집"이라며 아들을 따스하게 안아준 정미, 기억을 잃어가도 가족을 향한 사랑만큼은 잃지 않았던 염분이(김영옥) 할머니, 언니의 대학 진학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흔들림 없이 곁을 지킨 미호와 누나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제 일처럼 앞장서는 막내 범이, 그런 동생들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내일을 함께 버텨낸 미선 역시 그 시대의 단단한 연대를 상징했다. 태풍상사 직원들도 실패와 상처를 나누며 '원팀'으로 거듭났고, 태풍은 "나의 꽃이, 나의 햇살이, 나의 빗물이, 나의 바람이 모두 여기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다시 찾아올 어둠 앞에서도 "나의 사람들을 위해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서로를 지켜주고 빛나게 하고 끝내 함께 살아낸 이들은, 진정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