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지난 봄 일본 오키나와 캠프 당시였다.
키움 히어로즈에서 새로 합류한 아리엘 후라도와 데니 레예스가 나란히 불펜 피칭을 하고 있었다.
그물 너머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삼성 박진만 감독의 표정에는 흐뭇함이 묻어났다.
두 선수는 살짝 흡사한 스타일. 강력한 구위로 찍어 누르는 파이어볼러가 아닌 다채로운 변화구와 수싸움으로 타이밍을 빼앗는 유형의 투수들.
'가을야구 괜찮겠습니까'라고 묻자 박 감독은 "당장 페넌트레이스에서 로테이션 안 거르고 풀타임을 뛰어주는 게 어디냐"며 후라도의 두둑한 '야구보따리'를 흐뭇한 눈길로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두 투수의 유형이 비슷한 만큼 나란히 기용하지는 않으려고 한다"며 연속 등판은 피하게 할 뜻임을 밝혔다.
후라도는 가을야구까지 완주했고, 레예스는 부상으로 조기 이탈했다. 레예스가 빠지자 삼성은 구위형 투수를 물색해 헤르손 가라비토를 데려왔다. 가을야구를 대비한 포석이었다. 구위는 강했지만 아쉽게도 퀵모션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다시 맞은 스토브리그. 일찌감치 후라도, 르윈 디아즈와 재계약에 성공한 삼성은 외국인 투수 한자리와 아시안 쿼터를 놓고 방향을 설정했다.
결론은 '강한 공을 던지는 투수'였다. 이 기조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였다.
가라비토 대체 외국인과 아시아쿼터 나란히 최고 158㎞의 강력한 공을 뿌리는 파이어볼러를 영입해 1일 전격 발표했다.
1m98, 88kg 장신의 우완 정통파 맷 매닝(27)을 연봉 100만 달러에, 1m86, 90kg 우완 강속구 투수 미야지 유라(26)를 최대 18만 달러에 계약했다.
매닝은 2016년 메이저리그 아마추어 드래프트에서 디트로이트에 1라운드 9순위라는 높은 순번으로 지명 받았던 초특급 유망주 출신. 큰 키와 긴 팔다리로 익스텐션이 길어 체감스피드가 160㎞대를 육박한다. 미야지 유라 역시 강력한 구위로 삼성 불펜에 큰 힘을 보탤 전망.
다만 관건은 빠른 공 투수들의 영원한 숙제인 제구 유지다. S존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공략할 수 있느냐에 따라 세밀한 야구를 하는 KBO 연착륙 여부가 결정된 전망. 다만, 불 같은 강속구를 지녔다는 점은 성공할 경우 크게 터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의미다.
삼성 구단도 이 점에 주목했다. 잠재력이 큰 매닝이 경쟁 없는 KBO리그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적응한다면 후라도를 뛰어넘는 가을야구 1선발이 될 수 있다는 희망 속에 영입을 결정했다. 상대적으로 스피드는 매닝에 미치지 못하지만 안정된 제구와 경기운영을 자랑하는 '안전한 선택' 좌완 브라이언 새먼스가 아닌 매닝이란 '모험수'를 택한 이유다.
이미 삼성에는 후라도 원태인이란 리그 최고의 안정성을 자랑하는 두 완성형 에이스가 버티고 있다. 입도적 구위로 상대 현미경 분석을 무력화할 수 있는 광속구 투수가 필요하다.
리그에 자리 잡은 자동볼판정시스템(ABS)도 이번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ABS 도입으로 상대적으로 제구가 덜 되는 강속구 투수들이 유리해졌다. 빠른 공이 사각형 단면을 앞 뒤로 통과할 확률이 높다. 사각형 모서리 끝을 걸쳐도 스트라이크라, 인간 심판이 잡아주지 않을 공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하이패스트볼을 잘 던지는 투수들이 유리해졌다. 한화 이글스 김서현, 롯데 자이언츠 윤성빈 등 제구가 살짝 불안했던 광속구 투수들이 올시즌 비로소 투수다운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볼 빠른 투수는 제구가 좋지 않다'는 인간 심판의 선입견도 기계적으로 피해갈 수 있다.
삼성 관계자 역시 "트렌드가 확실히 바뀌었다"며 강한 구위의 투수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2026년 삼성의 목표는 분명하다. 2024년 한국시리즈에 이어 2025년 플레이오프까지 오르며 파란을 일으켰던 만큼 2026년 목표는 당연히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이를 위해 '우승청부사' 최형우 리턴을 확정지으며 공포의 타선 완성을 눈 앞에 뒀다. 공식 발표 직전이다.
후라도 원태인이란 리그 최고의 에이스 듀오에 매닝이란 광속구 투수를 더하며 밸런스를 맞춘 삼성 마운드. 미야지 유라가 약점이던 불펜 업그레이드를 해준다면 최강급 전력으로 대권 도전에 나설 전망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