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와 인구이동으로 전국에 빈집이 늘고 있습니다. 해마다 생겨나는 빈집은 미관을 해치고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우범 지대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농어촌 지역은 빈집 문제가 심각합니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빈집은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되지만, 일부에서는 도시와 마을 재생 차원에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매주 한 차례 빈집을 주민 소득원이나 마을 사랑방, 문화 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를 조명하고 빈집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합니다.]
광주를 대표하는 '젊음의 거리' 중 하나인 동구 동명동을 지나다 보면 푸른 지붕 아래 고즈넉함을 풍기는 가옥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외관은 서양식, 내부는 일본식, 우측은 한옥 양식으로 구성된 독특한 구조다.
'동구 인문학당'으로 불리는 이 가옥은 철거 위기를 딛고 근대 건축의 가치와 동명동의 생활사를 품은 인문학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전남 완도 출신 김성채(1906∼1987) 씨가 1954년 지은 것으로 알려진 가옥은 7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낡아갔다.
동구는 2020년 공영주차장을 조성하려고 이곳을 매입해 철거를 계획했다.
그러나 동명동 주민들은 "단순한 빈집이 아니라 동네의 생활사와 기억을 품은 공간"이라며 보존을 요구했다.
주민들은 건축학 교수, 건축가, 고택 연구자 등과 함께 건축적 가치와 생활사적 의미를 분석했다.
주민토론회를 열어 "구조와 핵심 공간이 온전히 남아 학술 가치가 높다", "동명동의 시간을 담은 공간을 모두가 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2020년 공공미술 프로젝트 '우리 동네 미술, 시티즌랩_별별별서'에서 작가들은 이 공간을 주제로 워크숍과 토론을 열어 활용 방안을 논의했고, 동구 인문 학당이라는 이름도 이때 나왔다.
동구는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2021년 '원형 보존'과 '현대적 기능 강화'를 기조로 리모델링에 착수했다.
외관과 기둥 구조, 전통 마루 등 근대 건축 요소는 보존하되 강의, 전시, 토론이 가능한 다목적 시설은 신축동에 배치했다.
인문학당은 2022년 1월 한옥 본채(생활사 공간), 인문동(신축), 공유 부엌(커뮤니티 공간) 등이 어우러진 복합문화시설로 재탄생했다.
마당과 중정은 주민과 방문객이 교류하는 열린 마당으로 설계됐고, 신축동 뒤로 펼쳐진 한옥의 고풍스러운 모습은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룬다.
인문학·문화예술 동아리, 지역 단체 워크숍, 인문 기획 강좌 등 공간 활용도도 높다.
본채는 20명, 인문동은 50명, 공유 부엌은 20명, 정원은 8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공유 부엌에서는 강좌와 연계된 조리·식음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특히 집주인의 외손자인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어린 시절을 보낸 기억을 토대로 이곳에서 '공간력(Magic of Real Spaces)'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오래된 공간이 주는 울림은 대체할 수 없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개관 첫해인 2022년 1천641명에 그쳤던 방문객은 2023년 1만9천125명, 2024년 1만3천230명, 2025년(11월 말 기준) 1만3천474명으로 늘어났다.
인문학당은 2023년 대한민국 공간문화 대상 대상(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동구 관계자는 14일 "주민들의 문제 제기와 행정의 적극적 소통이 맞물려 근대 건축 유산을 지켜낸 사례"라며 "건축학적 가치가 남다른 공간이다 보니 전국의 건축학도와 문화예술인들의 방문도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생활 속 인문 플랫폼으로 활용도를 더 높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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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