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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케이(3K)라니까요, 쓰리케이."
마조니의 말이 맞았던 걸까. 선발 데뷔전 역시 충격적이었다. 2006년 8월11일 잠실 한화전. 신재웅은 데뷔 첫 선발등판에서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할 뻔 했다. 9회 한화 신경현에게 안타를 허용해 무산됐지만 1안타 완봉승.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더이상 승리는 추가하지 못했고, 시즌 뒤 FA(자유계약선수) 박명환의 보상선수로 두산으로 이적해야만 했다.
신재웅은 두산 유니폼을 입은 뒤 소리소문없이 방출됐다. 그해 선발 진입을 위해 오버페이스한 탓에 캠프에서 어깨 통증을 느꼈고, 통째로 시즌을 날렸다. 고향인 마산에서 공익근무를 시작한 지 1년만에 방출통보를 받았다.
신재웅은 지난해 신고선수 신분으로 LG 2군에만 머물렀다. 하지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따금씩 어깨가 아프기도 했다. 신재웅은 "의식적으로 너무 오버핸드스로로 던지려 했다. 내 몸에 맞지 않는 폼이 문제였다"며 작년 시즌을 회상했다.
"변화에 두려워마라!" 신재웅은 지난해 말부터 모바일 메신저에 이같은 문구를 써뒀다. 그는 이에 대해 "사실 야구를 시작하고 내 의견을 고집하는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코치님과 상의 끝에 팔각도를 조금 내렸는데 너무 편하다. 팔각도에 신경을 안 쓸수 있게 됐다"며 "내 스스로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변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니 지금 결과도 좋은 것 같다"며 웃었다.
실제로 신재웅은 팔각도를 낮추면서 본인은 스리쿼터에 가깝게 팔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디오를 보니, 다른 오버핸드스로 투수들의 팔각도와 같았다. 스스로에 대한 압박이 자신을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신재웅은 올시즌 당당히 정식선수로 계약했다. 하지만 덤덤했다. 돌고 돌아 원래 있어야할 위치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컸다. 이런 마음가짐은 스프링캠프 호투로 이어지고 있다. 연습경기 6경기 중 절반인 3경기에 나와 팀내에서 가장 많은 12이닝을 던졌다. 선발로 나온 지난 19일 3실점(1자책)하기 전까지는 실점도 없었다. LG 코칭스태프는 신재웅의 페이스가 좋자 투구수를 100개 가까이 끌어올려 선발 테스트까지 마쳤다. 경기 조작 파문으로 뒤숭숭한 LG 캠프에 유일한 희망과도 같았다.
신재웅은 "요즘 관중이 있으니 등판하면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역시 프로 선수는 관중들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선보여야 한다. 이제 무대는 준비됐다. 당당히 잠실구장 마운드에 서서 공을 뿌릴 일만 남았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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