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전훈 MVP 김헌곤-김용일 부자의 야구 맹부삼천지교

기사입력 2012-03-18 15:04


삼성 라이온즈 김헌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삼성 김헌곤(오른쪽)과 부친 김용일 전 마산중 감독. 사진제공=김헌곤

아버지(김용일 전 마산중 감독)는 아들(김헌곤)이 야구 방망이를 잡는게 싫었다. 평범한 삶을 살았으면 했다. 아버지는 야구 선수로 성공하지 못했다. 영남대 입학 직전에서 물거품이 됐다. 체육특기생인데 일반 지원자로 서류 접수 과정에서 실수를 해 어이없는 진학에 실패했다. 영남대 유니폼까지 입고 김재박 전 LG 감독과 동계훈련까지 시작했지만 결국 입학도 못해봤다. 아버지는 이후 고향 마산중에서 약 20년 동안 감독을 했고 지금은 아들의 후원자가 됐다.

아들은 보통 선수들보다 뒤늦게 야구를 시작했다. 대개 초등학교 3~4학년에 야구에 입문하지만 김헌곤은 마산동중 1학년 때 야구를 하겠다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아버지는 절대 중도에 그만두면 안 된다는 약속을 받고 허락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이루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감독을 그만두고 아들을 따라 대구로 이사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아들 뒷바라지가 주업이 됐다. 하지만 아들의 야구 선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김헌곤은 아버지와 친분이 두터웠던 성낙수 감독이 있었던 경복중으로 옮겼다. 또 성 감독을 따라 대구고에서 제주관광고로 전학갔다. 아버지도 제주도로 거처를 옮겼다. 엄마(테니스 선수 출신 박순이씨)는 경북 경산에서 조그마한 식당을 해 돈을 벌었다. 아버지는 제주관광고에서 성 감독을 보좌해 정식 코치는 아니었지만 아들의 훈련을 도왔다. 대개 성공하기 위해 육지로 나오는데 부자는 섬으로 갔다. 모두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지만 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들은 야구가 마냥 좋았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맘껏 야구를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김헌곤은 투수를 하고 싶었지만 키가 생각만큼 자라지 않아 외야수로 돌아섰다. 결국 프로 입단에 실패, 아버지가 원했던 영남대에 진학했다. 그리고 2010년말 삼성에 1차 드래프트로 입단했다.

김헌곤은 이번 2012시즌 개막을 앞두고 1군 진입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입단 첫 해인 지난해 주로 2군에서 뛰면서 1군에 들락날락했다. 2군에선 맹타를 휘들렀지만 1군 성적은 12타수 1안타가 전부였다. 김헌곤은 류중일 삼성 감독의 눈에 들어 2군 선수 치고는 1군 해외 전지훈련에 합류해 최고의 활약을 보였다. 타율 4할7푼4리로 홈런 타자 최형우(3할6푼7리) 채태인(2할9푼) 보다 뛰어났다. 류중일 감독은 "김헌곤이 전훈 MVP이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하지만 김헌곤이 넘어야 할 산은 너무 많다. 박한이 강봉규 정형식 우동균 등을 이겨야 1군 주전이다.

김헌곤이 가진 최고의 경쟁력은 강한 어깨다. 야구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최고의 유전자 덕분이다. 김헌곤은 외야에서 홈까지 노바운드로 송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아버지는 "어릴 때 헌곤이에게 매일 팔굽혀펴기를 100번 이상 시켰는데 그게 지금의 어깨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헌곤은 "아버지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 정도까지도 야구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이미 아들은 아버지가 못 다한 걸 다했다. 그런데 부모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 같다. 1군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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