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 아바타' 모상기(25·삼성)는 고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에게 갚지 못한 빚이 있다. 모상기에게 삼성 유니폼을 입혀준 사람이 장 감독이었다. 2005년말 모상기는 당시 장효조 스카우터의 눈에 들어 투수로 삼성에 입단했다. 신일고 출신인 모상기는 고교 시절까지 투수와 야수를 왔다갔다했다. 키 1m93, 체중 105kg으로 신체조건만 보면 미국 메이저리그에 갔다 놓아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모상기의 인생은 삼성 유니폼을 입은 후 4개월 만에 바뀌었다. 투수 훈련을 받았는데 구속이 좀체 올라가지 않았다. 그때 같은 신일고 출신 선배 박흥식 타격코치(현 넥센 코치)가 타자 전향을 권유했다. 모상기도 투수보다 야수로 새로 시작하는게 선수 생활을 더 오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당시 조계현 2군 투수 코치(LG 수석코치)를 찾아가 상의한 후 그 다음달부터 방망이를 잡았다. 당시 스카우터였던 장 감독에겐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았다. 몇 개월 뒤 타자 모상기를 본 장 감독은 대노했다. 모상기를 따로 부른 장 감독은 어린 선수가 듣기에 마음에 큰 상처로 남을 정도의 따금한 질책을 했다고 한다. 그후 모상기는 2군에서 줄곧 뛰다 상무를 거쳐 지난해 1군과 2군을 오르락내리락했다. 모상기가 군제대 후 돌아와보니 장 감독은 2군 감독이 돼 있었다. 모상기는 장 감독이 무서웠다. 그는 장 감독의 혹독한 훈련에 무아지경이 될 정도로 배트를 휘둘렀다. 그 덕분인지 모상기는 지난 시즌 중반 용병 가코의 부진을 틈타 1군으로 올라가 반짝 활약했다. 32경기에서 74타수 14안타 4홈런을 때렸다. 모상기가 깜짝 스타가 돼 2군을 떠나 있을 무렵, 이미 장 감독은 암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모상기는 지금도 죽기 전 장 감독이 건네준 신문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감독님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었다. 숙소 부근에서 만났는데 제 사진이 크게 난 1면 신문을 품고 계시다가 말없이 저에게 주시고 가셨다"고 했다. 장 감독은 지난해 9월 7일 세상을 떠났다. 모상기는 "장 감독님은 저에게 타자로 성공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나중에는 말없이 따뜻하게 저를 지켜봐주었다"면서 "타격의 해법은 몸이 알아서 반응할 때까지 훈련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던 그 말씀을 잊지 않고 있다"고 했다.
모상기는 이번 시즌도 1군에서 개막을 맞지 못할 경우 2군 7년차가 된다. 그가 그동안 얻은 별명은 '경산 용병' '2군 이대호' '양준혁 빙의' 등이 있다. 모상기는 삼성 훈련장이 있는 경산의 터줏대감이다. 인근 식당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다. 타자로 2군 무대를 평정했다. 지난해 1군 무대에선 우천 중단 경기에서 선배 양준혁(은퇴)의 만세타법 등을 똑같이 패러디하는 퍼포먼스로 화제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모상기는 "경산이 이제 내 집 같이 편안하면 안 된다"면서 "올해는 어떤 식으로든 끝을 봐야 한다. 그 정도로 절박하다. 올해도 2군을 벗어나지 못하면 결정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모상기를 보는 사람들의 다수가 몸이 아깝다고 말한다. 탁월한 신체조건이다. 그는 "매일 몸을 볼때마다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할 따름이다"면서 "어머니가 두 형제를 야구 선수로 키우면서 8년 동안 야구팀 총무를 했다. 집안에 돈이 없어 어머니가 매일 같이 학교에 와서 밥하고 설거지를 했는데 아직까지 프로 야구선수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모상기는 서울 백운초에서 야구를 배웠고 신일중-신일고를 거쳤다. 모상기의 동생은 광주 송원대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 그는 야구 선수가 되기 전 축구 골키퍼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축구에는 1.5군이라는 표현이 있다. 하지만 야구에는 그런 게 없다. 확실한 1군이고 싶다"도 했다. 그렇다. 현재 모상기가 삼성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1.5군이다. 더 위로 올라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 모상기의 이번 시범경기 성적은 6타수 2안타 4타점, 타율 3할3푼2리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