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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가 사랑받는 시대다. 건방진 듯, 쿨한 듯한 모습이 묘한 매력을 풍긴다. 8일 목동구장. 한국프로야구 첫 등장부터 '나쁜 남자 신드롬'을 몰고 올 만한 이가 있었다. 돌아온 핵잠수함, 'BK' 김병현이었다.
데뷔전 결과는 좋지 못했다. 1이닝 3안타 1삼진 1실점. 첫 타자부터 내리 세 타자에게 안타를 맞고 실점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만난 김병현은 당당했다. 얼굴에 구슬땀이 흐르고 있었지만, 표정에는 여유로움이 한껏 묻어나왔다.
"첫 등판 소감요? 재밌었어요." 김병현이 입을 열었다.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2개나 갖고 있는 그이지만, 태연함을 넘어 뻔뻔할 정도로 당당했다. 게다가 한미일을 통틀어 1군 무대 등판은 2007년 플로리다 시절 이후 처음이었다.
아무리 점수차가 벌어진 상황이라도 '점검' 차원에서 공을 던지기는 쉽지 않다. 김병현은 "아직 보직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선발로 길게 던지려면 스플리터는 꼭 던져야 한다. 그래서 던졌다"고 밝혔다. 김병현은 한두차례 이날과 같은 테스트를 마친 뒤 선발로테이션에 진입한다. 고정 선발로서 긴 이닝 소화, 그리고 왼손타자 상대 약점 극복은 반드시 풀어야할 숙제다. '스플리터 난타'는 좋은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김병현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던지니 스플리터가 떨어지지 않는다. 밋밋하게 들어가더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전까지 모습을 취재진 앞에서 '센' 척 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김병현은 냉정하게 자신의 약점을 인정했다. 정말 '쿨'했다. 이게 바로 나쁜 남자의 매력 아닐까. 그저 센 척, 잘난 척만 하는 건 나쁜 남자가 아니라 '진상'이다.
팬들도 그의 매력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의 인터뷰 기사가 나오자 인터넷 상에선 "멘탈 최고", "진짜 쿨하다", "여유가 넘치지만 그것도 매력"이라는 반응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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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현은 실점한 뒤 내리 세타자를 범타로 잡아냈다. 뒤늦게 몸이 풀렸는지 직구 구속은 130㎞대 후반에서 140㎞대 초반으로 올라갔다. 이어진 1사 2,3루 상황 김태군의 투수 앞 땅볼 땐 몸을 던지는 호수비까지 선보였다. 투구 뒤 몸이 1루쪽으로 돌아간 상태에서 3루 방향으로 급격히 몸을 틀어 타구를 잡아냈다. 수비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김병현은 "수비 멋졌죠?"라며 씨익 웃었다.
"점수 주기 싫었어요. 1점 더 주면 쪽팔리잖아요." 이후 그의 말이 더 명쾌했다. 누구한테든 지고싶지 않은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시간을 거슬러 김병현의 메이저리그 시절로 돌아가보자.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고 36세이브를 올리며 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우뚝 선 지난 2002년. 김병현은 5월31일 샌프란시스코와의 원정경기서 1-0으로 앞선 9회말 마무리투수로 등판했다. 아웃카운트 2개를 잡아내자 타석엔 배리 본즈가 들어섰다. 아무리 2사에 주자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벤치는 조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 애리조나 밥 브렌리 감독은 고의4구를 지시했다.
이때 김병현의 행동이 이상했다. 한동안 공을 던지지 않았다. 마운드에 서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심지어 뒷걸음질쳐서 마운드 밑으로 내려가기까지 했다. 짝다리를 짚고 또다시 벤치나 홈플레이트가 아닌 다른 곳만 응시했다. 좀처럼 경기에서 나오기 힘든 모습이었다. 태업에 가까운 불만 표시였다.
결국 벤치의 의도대로 볼넷을 내줬다. 김병현은 다음 타자 제프 켄트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세이브를 추가했다. 그의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볼 수 있던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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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넥센 투수들은 총 10개의 볼넷을 내줬다. 김병현을 제외한 나머지 투수, 강윤구 박성훈 김상수가 10개를 합작했다. 급기야 4사구 개수를 나타내는 전광판의 'B' 아래 'B'자가 표시됐다. 두자릿수 표기가 안되는 구형 전광판이라 11 대신 B가 뜬 것이다.
경기 전 김시진 감독과 정민태 투수코치는 입을 모아 '멘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병현 대신 2군으로 내려간 5선발 심수창을 지적한 것이다. 특히 정 코치는 "좋은 공을 갖고 있는데 그걸 못 던진다. 자신감도 없고, 안 좋은 생각만 한다. 멘탈이 부족한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금 중간에서 던지는 김상수도 그걸 고치는 데 3년 걸렸다. 그렇게 힘든 일이다. 이젠 일부러라도 능글 맞게 던지더라. 심수창이 2군에서 얼마나 달라질 지는 모르겠지만, 멘탈이 달라지지 않으면 힘들다"며 무기한 2군행의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심수창은 마운드에서 전형적인 '착한 남자'다. 몸쪽 공을 던지다 타자가 맞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공이 가운데로 몰린다. 또한 맞는 게 두려워 자꾸 도망간다. 불리한 볼카운트만 쌓여가고, 스트라이크존으로 정직하게 던진 공은 타자의 배트에 어김없이 맞아나간다.
정 코치는 "김병현을 봐라. 마운드에 올라갔을 때 본인이 최고라 생각한다"고 했다. '칠 테면 쳐봐라', '까짓 거 맞지'라는 태도다. 넥센 투수들에게 멘탈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날, 공교롭게도 넥센 마운드에 김병현이 등장했다. 뻔뻔함이 결코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마운드에선 김병현처럼 '나쁜 남자'가 될 필요가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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