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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라인업을 조금 세게 짰습니다."
삼성의 좌타 그물망 설치
오른손 잠수함투수인 김병현에겐 아무래도 왼손타자와의 승부가 관건이다. 멀리서 돌아나오는 오른손 잠수함투수의 공을, 왼손 타자는 충분한 시야를 확보해 볼 수 있다.
이날 김시진 감독의 반응도 재미있었다. 김 감독은 "어차피 선발투수는 왼손타자 오른손타자를 모두 만나야 한다. 왼손타자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면 김병현을 선발로 낼 수 없다. 김병현의 선발 등판은 홈팬들을 위한 선물의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시진 감독은 류중일 감독으로부터 '센 라인업'에 대해 언급하며 "그럼 1회 마치고 나서 우리도 왼손투수로 확 바꿔볼까?"라며 웃었다.
김병현, 퀵모션 1.30초는 선발 전업의 걸림돌
이날 삼성은 타격훈련때 사이드암 투수 출신인 김현욱 코치가 배팅볼을 던졌다. 이 역시 김병현에 대비한 훈련이었다. 김현욱 코치가 배팅볼을 던진 건 올들어 SK와의 경기때 이영욱에 대비하기 위한 사례에 이어 두번째라고 한다. 덕분에 김현욱 코치는 선발타자 9명에게 모두 300개 가까운 공을 던져줬다.
역시나 김병현에게 좌타 라인은 앞으로도 과제가 될 듯하다. 김병현의 공식 기록은 4⅔이닝 6안타 6탈삼진 3실점. 그런데 6안타 가운데 5개가 삼성 1번부터 5번까지의 좌타 라인에서 나왔다. 좌타자를 상대로 4사구 2개도 기록했다. 좌타자에게 적시타를 많이 맞은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부담이 느껴지는 성적이다.
더 큰 문제는 슬라이드스텝이다. 흔히 퀵모션이라 부르는, 주자 있을 때의 슬라이드스텝이 느렸다. 잠수함투수가 대체로 안고 있는 문제점이다.
4회에 삼성 신명철이 볼넷으로 나간 뒤 2루 도루에 성공했다. 그 직전에 김병현의 슬라이드스텝을 체크해보니 1.29초가 나왔다. 5회에는 정형식이 내야안타로 나간 뒤 역시 2루 도루에 성공했다. 이 장면 직전에도 슬라이드스텝을 체크하니 1.30초가 넘었다. 두 케이스 모두 주자는 넉넉하게 세이프됐다.
보통 투수 차원에서 도루를 허용하지 않으려면 퀵모션과 관련해 1.20초 정도를 유지해야 한다. 특히 최근 몇년간 프로야구 선수들이 빨라지면서, 이 기준이 점점 당겨져왔다. 김병현이 향후 선발로서 자리잡으려면 반드시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김병현은 지금보다 훨씬 좋은 공을 던지면서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에도 퀵모션이 선발 전환의 걸림돌이 됐었다.
5회 2사후 강판, 이처럼 쿨할 수가!
김시진 감독은 당초 95개 정도를 김병현의 맥시멈 투구수로 정하고 경기전에 취재진에게 밝혔다. 공교롭게도 제한투구수가 묘한 교체 타이밍을 불렀다.
넥센이 4-2로 앞서고 있던 5회 2사 2루에서 김병현은 투구수가 96개가 됐다. 사실 이 장면에서 투수교체를 하는 건 감독으로서도 괴로운 선택이다. 아웃카운트 한개만 더 잡으면 승리투수 요건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기자실에서도 "설마, 한타자 정도는 더 기회를 주지 않을까"란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김시진 감독은 김병현의 어깨 보호가 최우선이었다. 아웃카운트 한개를 남겨놓고 주저없이 김병현을 김상수로 교체했다. 노히트 게임을 하고 있더라도 바꿀 것이라고 단언했던 김 감독이다. 한편으론, 김병현이 이날 4⅔이닝 동안 96개를 던졌으니 투구수 관리에선 문제가 있었던 셈이다.
강판 상황에서 김병현의 얼굴 표정이 더 흥미로웠다. 처음엔 아쉬운 기색이 잠시 스쳤지만, 마운드에서 내려오면서 쿨하게 웃었다. '리드 상황에서 5회 2사 강판'을 경험하는 투수가 이처럼 쿨한 표정을 짓는 걸 여태 본 일이 없다. 밝은 표정으로 벤치에 앉았다.
이날 이승엽과의 대결이 흥미진진했다. 첫 타석에서 시속 146㎞와 147㎞짜리 포심패스트볼을 마치 '칠테면 쳐라'는 식으로 한가운데로 넣다가 좌월 3루타를 허용했다. 가운데로 몰린 공을 이승엽이 여지없이 받아쳤다. 3회 이승엽의 두번째 타석에선 공 6개가 모두 이승엽의 몸쪽으로 향했다. 이 장면에선 의식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6구째 133㎞짜리 변화구가 이승엽의 몸에 맞았다. 5회 세번째 대결에선 다시 과감해졌다. 볼 3개를 먼저 던진 뒤 4구째 파울이 나왔고, 그후 5구와 6구째에 또한번 과감한 몸쪽 직구 승부를 했다. 이승엽은 두차례 모두 헛스윙으로 삼진을 기록했다.
김병현은 이날 직구 50개, 커브 4개, 슬라이더 15개, 체인지업 16개, 투심패스트볼 11개를 던졌다. 직구 최고시속 147㎞, 직구 최저는 133㎞였다. 96개 가운데 스트라이크는 60개였다.
목동=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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