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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방심했다간 여지없이 보크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호시탐탐 도루를 노리는 한국 야구의 특징앞에 해외파와 외국인 투수들이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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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를 밝히려면 우선 한국야구의 특징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수 년전부터 한국야구의 트렌드는 '뛰는 야구'로 굳어져왔다. 2000년대 중반부터 두산과 SK가 일으킨 '뛰는 야구'의 바람은 금세 8개구단 전체로 확대됐다. 빠른 발을 앞세워 한 베이스씩 더 진루하는 것은 물론, 누상에 나가서도 수시로 도루를 시도한다. 감독들도 스피드가 좋은 선수들을 선호하고, 이들에게는 연차에 관계없이 도루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린라이트'를 폭넓게 적용해준다.
그런데 미국출신 투수들은 이 슬라이드 스텝에 익숙치 않다. 일단 메이저리그 등에서는 도루나 번트를 활용한 작전이 많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도루를 하는 선수 자체도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투수들은 견제에 신경을 분산하기 보다는 장타를 맞지 않기 위해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하게 된다.
때문에 미국출신 외국인선수를 새로 영입할 경우, 한국 코칭스태프는 반드시 슬라이드 스텝 훈련을 시킨다. 미국에서 하던대로 주자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한국야구에서는 버티기 어려워서다. 처음에는 이를 낯설어하던 외국인 투수들도 한두번 도루에 당하다보면 왜 슬라이드 스텝이 중요한 지 체감하게 된다.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정임을 알게 되면 자연스레 시키지 않아도 연구한다.
하지만, 십 여년 이상 몸에 밴 습관을 단박에 고치긴 힘들다. 그러다보니 외국인 투수들에게는 일종의 강박증이 생기게 된다. 주자를 내보낸 뒤부터 '뛰지 못하게 해야 해!'라는 의식이 머리속에 가득한데 몸이 잘 안따라주기 때문에 생기는 괴리감이 그 강박증의 실체다. 결국 머리와 몸이 따로 놀면서 어색한 동작이 생기고, 이게 보크로 이어진다.
이는 외국인 투수 뿐만 아니라 해외파 출신 박찬호와 김병현에게도 적용되는 문제다. 박찬호도 올해 한 차례 보크를 범했고, 김병현의 경우에는 독특한 투구동작이 보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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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유로 외국인 투수와 해외파 출신 투수들이 보크의 함정에 쉽게 빠지는 것이다. 이제 막 시즌 중반에 접어들었는데, 여기저기서 보크가 나왔다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유난히 보크가 많은 시즌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사실은 보크가 지난해보다 많지 않다. 올해 272경기를 기준으로 할때 총 보크수는 17개였다. 이에 반해 지난해에는 271경기를 기준으로 19개의 보크가 나왔다. 보크가 줄었음에도 더 많아보이는 것은 박찬호와 김병현의 영향력 때문으로 분석된다. 메이저리그에서 엄청난 경력을 쌓은 화제의 투수들이 흔치 않은 보크를 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박찬호는 지난 5월 4일 대구 삼성전에서 0-2로 뒤진 4회말 1사 2,3루 김상수의 타석 때 투구동작에 들어갔다가 공을 떨어트리며 보크를 범했다. 박찬호가 국내 무대에서 처음으로 저지른 보크여서 1차 이슈가 됐고, 이후 박찬호가 "미국에서는 그런 일(보크지적)이 없었다"고 심판진에게 불만을 토로했다가 며칠 후 "내가 착각했다. 보크가 맞았다"고 정정하면서 2차로 이슈가 됐다.
김병현 역시 상당히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실전에서 보크를 지적받지는 않았는데, 투구폼을 두고 보크 여부에 대한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 6월 26일 목동 두산전에서 3회 무사 1루 상황 때 두산 김진욱 감독이 심판진에게 김병현의 보크를 했다고 어필한 게 발단이었다. 이날 심판진은 "일관성있는 동작이라 타자를 기만한 행위로 볼 수 없다"며 이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각 구단 감독과 투수코치, 해설위원 등 전문가들 사이에 김병현의 투구동작이 보크인지 아닌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히 일어났다.
결국 박찬호와 김병현으로 인해 '보크'가 새롭게 야구계의 화제거리로 떠오른 덕분에 보크의 체감지수가 한층 높아진 셈이다.
대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