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가 갑자기 살아났다. 무기력하게 8연패를 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침묵
경기전 분위기는 전날과 다르지 않았다. 선수들은 애써 밝은 표정으로 나왔다. 정근우는 "이제 -1 아닌가"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했다. 그러나 이만수 감독은 달랐다. 경기전 훈련시간에 덕아웃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구단 홍보팀에 "오늘은 경기전 인터뷰를 안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나타냈고, 취재진이 이를 수용했다. 이 감독은 훈련전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에게 "즐겁게 하자"고 격려의 말을 한 뒤 감독실에서 두문불출하며 경기를 준비했다. 8연패 동안의 힘든 심정을 그대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전날 선수들이 단정히 머리를 깎고, 선수단 전체가 농군패션을 하며 분위기를 바꾼 SK는 이날 3루 주루코치도 바꾸며 또한번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다. 이전엔 이광근 수석코치가 3루 주루코치를 겸했는데 이날부터 한혁수 수비코치를 3루 코치 박스로 보냈다. 이 코치가 수석으로서 이 감독을 보좌하도록 한 조치였다.
반가운 비
초반은 좋았다. 제구가 불안한 김병현이 볼넷과 사구를 내주며 2사 만루의 찬스를 잡았고, 김강민의 안타로 2점을 선취한 것. 호투하던 송은범이 한계 투구수에 온 5회초 위기가 닥쳤다. 2사 1,2루서 8번 허도환의 2루타로 1점을 내줘 2-1로 쫓긴데다 2사 2,3루의 위기가 계속 됐다. 이 감독이 송은범을 엄정욱으로 교체할 때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소나기가 내렸다. 경기가 10분 정도 중단이 됐고, 비가 약해져 재개되자 바뀐 엄정욱은 타격감이 좋았던 김민성을 3루수앞 땅볼로 처리했다. 비가 넥센의 상승세를 꺾은 셈이 됐다.
4-2로 앞선 6회말 무사 1,2루서 임 훈이 보내기번트에 실패한 장면도 행운이 깃들었다. 포수 허도환이 번트타구를 잡아 3루로 뿌려 2루주자를 잡아냈으나 전일수 주심이 파울을 선언. 2스트라이크로 번트를 대지 못한 상황이 됐으나 임 훈은 우전안타로 번트 실패를 더 좋은 찬스로 연결시켰다. '되는 집'의 모습 그대로였다.
베테랑의 힘
장기영의 솔로포로 2-2 동점이 되며 다시 불안이 엄습했을 때 베테랑이 나섰다. 이호준이 6회말 무사 1루서 넥센 선발 김병현으로부터 우월 투런포를 쏘아올렸다. 16일만에 등판한 김병현이 생각보다 빨리 구위가 떨어졌고, 최근 타격감이 살아난 이호준의 방망이가 김병현의 실투를 놓치지 않았다. "찬스에서의 한방이면 팀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정근우의 말이 맞았다. 이호준의 그 한방이 천정의 형광등을 켤 때 필요한 스타트 램프의 역할을 했다. 홈런으로 분위기가 바뀌자 SK 타선이 언제 부진했냐는 듯 춤추기 시작했다. 선구안도 좋아져 볼넷을 골랐고, 조인성 최윤석 등의 안타가 폭발하며 4점을 추가해 8-2로 앞서며 사실상 승부를 갈랐다. SK가 한 이닝에 6점을 득점한 것은 지난 5월 20일 대전 한화전서 7회에 6득점한 이후 42경기만이고, 두자릿수 점수를 올린 것은 6월10일 인천 삼성전서 11대3으로 승리한 이후 23경기만이다.
이 감독은 9회초 경기 종료와 함께 뒤로 돌아 웃음기 없는 얼굴로 코치진과 악수를 나눴다. 예전 두 팔을 들어 포효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하룻만에 다시 승률 5할을 만든 SK가 이날의 활발한 모습을 이어갈지 아니면 다시 연패의 모습으로 돌아갈지 두산과의 주말 3연전이 궁금해진다.
인천=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