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PO]롯데의 '그림자 영웅' 황재균의 가치

기사입력 2012-10-10 09:22


2012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2차전 두산과 롯데의 경기가 9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다. 9회말 무사 1루 두산 윤석민의 번트타구를 잡은 롯데 3루수 황재균이 2루로 공을 뿌리고 있다.
잠실=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2.10.09/

준플레이오프 2차전의 최고 영웅은 누가 뭐래도 9회에 결승 솔로홈런을 친 롯데 백업포수 용덕한이다.

야구를 잘 아는 팬이든, 잘 모르는 팬이든 여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친정팀의 가슴에 꽂은 통렬한 홈런 한 방으로 용덕한은 '개선장군'의 대접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용덕한이 더욱 화려하게 빛날 수 있던 데에는 음지에서 온몸을 던져 적군의 반격을 막아낸 '언더그라운드 히어로'의 공이 상당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양지의 MVP' 용덕한의 뒤에서 엄청난 역할을 해낸 '음지의 영웅' 또는 소리없이 강한 '언성(unsung) 히어로'는 바로 핫코너를 빈틈없이 지킨 3루수 황재균이다. 특히 9회말, 황재균의 초특급 번트 수비는 롯데의 2차전 역전승을 완성하는 마지막 '화룡점정'이었다.


프로야구 두산과 롯데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가 9일 잠실야구장에서 펼쳐졌다. 용덕한과 황재균 9회말 무사 1루, 윤석민의 타구가 병살처리 되자 환호하고 있다.
잠실=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2012.10.09/
두 번의 특급수비, 두산의 승리 시나리오를 분쇄하다

올 시즌 황재균의 연봉은 1억5000만원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해본다. 황재균은 자기 몸값의 한 80%쯤을 9일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해냈다. 그만큼 이날 그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핫코너'라 불리는 수비의 격전지 3루에서 마치 홈런에 버금가는 두 차례의 화려하고 멋진 수비를 통해 승리를 만들어냈다.

우선은 6회말. 0-1로 뒤지던 롯데는 2사후 두산 3번 김현수에게 중전안타를 맞았다. 투구수 85개가 넘어가며 롯데 선발 유먼의 구위도 서서히 저하되던 시기다. 경기 후반에 접어들어 두산이 추가점을 낸다면 롯데로서는 추격이 버거워질 수 있다. 타석에 들어선 두산 4번 윤석민은 유먼의 난조를 노려 적극적인 초구 공략을 택했다. 적절한 노림수였다. 타구는 제대로 걸렸다. 3-유간을 꿰뚫는 안타성 직선타구가 배트 끝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황재균의 '강심장'은 이를 막아낸다. 얼굴쪽으로 날아오는 강한 직선타구에서 마지막까지 시선을 돌리지 않으며 글러브로 공을 낚아챘다. 이 장면은 양팀 덕아웃에 상반된 심리적 변화를 촉발했다. 전날 역전패를 경험한 두산 쪽에는 '이렇게 또 막히는가'하는 좌절감, 그리고 롯데 쪽에는 '이거 해볼만 하겠는걸'과 같은 자신감이다.

하지만 황재균의 가치가 정말로 번뜩인 것은 2-1로 전세를 뒤집은 9회말 마지막 수비 때였다. 두산 선두타자 김현수가 중전안타로 출루하며 반격의 신호등을 켰다. 양팀 벤치가 바빠졌다. 두산은 발빠른 대주자 민병헌을 투입했고, 롯데는 1점차 승리를 지키기 위해 정대현으로 투수를 바꿨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격변'이 예상됐다.


두산 벤치의 선택은 '4번타자의 번트'였다. 허를 찌르는 작전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를 수행하는 윤석민은 세련되지 못했다.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순진하게 번트자세에 들어갔다. 황재균의 센스는 이 '어리석은 순진함'을 놓치지 않았다. 정대현이 투구 동작에 들어가는 순간 홈으로 대쉬했다. 윤석민의 번트와 그 방향까지도 예상한 움직임이다.

결국 황재균은 자신의 앞으로 굴러온 타구를 낚아 채 '유격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 플레이를 완성시켰다. 두산의 역전 시도를 단숨에 제압한 '초특급 수비'였다. 만약 황재균이 홈 대시로 먼저 따고 들어와 타구를 처리하지 못했다면, 통상적으로 투수 정대현의 송구로 타자만 1루에서 잡았을 것이다. 바로 두산이 원하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황재균의 기민한 움직임은 두산의 시나리오를 산산히 분쇄해버렸다.


두산베어스와 롯데자이언츠가 8일 오후 잠실야구장에서 준PO 1차전 경기를 가졌다. 10회 무사 1,3루에서 롯데 황재균이 1타점 2루타를 날렸다. 2루에서 두손을 들며 환호하고 있는 황재균.
잠실=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2.10.8
떠밀려 맡았던 3루, 이제는 최고의 '핫코너 마스터'

그런데 이처럼 '롯데 역전승'의 숨은 주역으로 두산의 승리 시나리오를 산산히 찢어발긴 황재균은 사실 주전 3루수로 나선 지 몇 년 안 된 선수다. 그것도 스스로의 선택이었다기 보다는 팀내 경쟁과 역학관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경기고 재학시절 팀의 주전 유격수였던 황재균은 현재 넥센 히어로즈의 전신인 현대 유니콘스에 2006년 2차 3지명 신인으로 입단하며 '차세대 대형유격수'로 주목을 받았다. 2007년 후반기부터 팀의 주전 유격수로 나서며 63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을 쳤다. 그렇게 황재균은 현대 왕조의 새로운 유격수로 자리매김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해 말 현대 유니콘스가 사라지고 2008년 '우리 히어로즈'로 이름을 바꾼 뒤 황재균의 운명도 달라졌다. 시즌 초반에는 주전 유격수였으나 시즌 중반 이후 유격수 자리를 입단 동기인 강정호에게 내주고 3루수 정성훈의 백업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2009시즌이 되자 '유격수 강정호-3루수 황재균'으로 포지션 정리가 끝난 듯 했다.

하지만 또 한 차례의 파도가 몰아쳤다. 2010년 7월 롯데로 갑작스레 트레이드 된 것이다. 롯데에서의 2010시즌을 어수선하게 보낸 황재균은 지난해 유격수 복귀를 타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3루수가 맞다는 것만 확인하고 다시 '핫코너'로 돌아왔다.

이런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황재균은 2008년 이후 불과 5시즌 만에 '국내 최고 수준의 3루수'로 평가받는 지경에 도달했다. 원래 타고난 신체조건(1m83/90㎏)과 어린시절 유격수로 활약하며 키운 날카로운 수비 센스 덕분이기도 하지만, 남몰래 흘린 땀도 역시 큰 역할을 했다.

현재 수비에 관한한 국내 프로야구 최고 3루수로는 KIA 이범호와 SK 최 정, LG 정성훈 등이 손꼽힌다. 그러나 이제는 롯데 황재균도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 하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이범호와 정성훈은 나이와 기량 면에서 이미 완숙기를 거친 '지는 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87년생 동갑내기인 황재균과 최 정이야말로 향후 오랫동안 '3루수 양강구도'를 형성하게 될 '떠오르는 태양'이자 '라이벌'이라고 부를만 하다.

롯데는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먼저 2승을 따냈다. 롯데가 만약 1승을 더 보태 SK와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된다면 '황재균 vs 최정'의 명품 3루수 대결은 또 다른 흥미진진한 볼거리가 될 것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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