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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부(deja vu)'.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을 마치 전에도 보거나 경험한 적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다. '기시감'이라고도 한다. 누구나 한 두번쯤은 이런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낯선 장소에 갔거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꼭 전에 와봤거나 비슷한 대화를 해본 것 같은 느낌. 그게 바로 데자부다.
스케일이 달랐던 '야통'의 결단
24일 대구 구장에서 2012 한국시리즈 1차전을 몇 시간 앞둔 시점. 류 감독은 덕아웃에 모인 취재진에게 "오늘 선발포수는 이지영이다"라고 선언했다. 취재진이 잠시 술렁였다. 당연한 반응이다. 대부분의 취재진은 한국시리즈 1차전과 같은 중요한 경기라면 당연히 베테랑이자 이제는 삼성의 상징과 같은 주전포수 진갑용을 낼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 감독은 이지영을 선택했다. 류 감독은 이 선택에 대해 "모험이다"라고 선뜻 인정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모험이긴 해도 이지영에게는 큰 기회가 될 것이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적어 큰 무대가 부담스러울 수는 있지만, 이렇게 큰 경기를 통해 성장하는 선수도 많이 봤다. 그런 기회를 주려고 했다."
최종 우승이 걸린 한국시리즈라는 커다란 무대에서 류 감독은 두 마리 토끼를 노린 것이다. 팀의 승리는 기본이었고, 거기에 덧붙여 팀을 이끌어갈 차세대 주전포수가 한 단계 레벨업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전체를 보고, 미래를 생각할 줄 아는 류 감독의 큰 스케일을 엿볼 수 있는 선택이다.
결과적으로 류 감독의 이 결단은 커다란 효과를 봤다. 이지영은 선발 포수로 나서 7회말 대주자 강명구로 교체되기 전까지 무난하게 경기를 이끌었다. 이날 선발 윤성환의 전담포수로 올 시즌 활약한 덕분도 있지만, 큰 경기에서 흔들리지 않는 배짱이 돋보였다. 특히 1회초 SK 박재상의 도루를 저지한 것은 이날 경기 초반의 흐름을 삼성으로 이끈 호수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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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장면은 낯설지 않다.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SK를 이끌던 김성근 감독도 비슷한 선택을 했다. 그 대상은 현재 SK의 에이스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좌완 투수인 김광현이었다. 상황은 조금 달랐다. 류 감독은 1차전에 이런 결단을 보여줬지만, 김 감독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4차전에서 '김광현 카드'를 뽑아들었다.
당시 SK는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1, 2차전에서 모두 패해 큰 위기에 빠져 있었다. 잠실로 장소를 이동해 치른 3차전에서 겨우 이겼지만, 시리즈 전적은 여전히 1승2패로 불리했다. 그런 상황에서 치른 4차전. 김 감독은 선발로 김광현을 투입했다. 이 또한 '모험'에 가까웠다. 그해 신인 김광현은 정규시즌에서 기대만큼의 성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20경기에 나왔지만, 3승7패에 평균자책점 3.62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4차전 무대에서 김광현은 비로서 날개를 활짝 펴고 크게 비상했다. 선발로 나와 7⅓이닝을 단 1안타만 내주고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승리투수가 됐다. 결국 SK는 이 승리를 발판삼아 역전 우승을 거뒀다.
4차전 경기 종료 후 김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SK에 큰 투수가 하나 탄생했다." 한국시리즈라는 큰 무대에 김광현을 낸 것은 모험에 가까웠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를 계기로 김광현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어쩌면 류 감독이 2012 한국시리즈 1차전의 선발포수로 이지영을 내면서 언급했던 "큰 경기를 통해 성장하는 선수"의 사례 가운데에는 2007 한국시리즈에서의 김광현도 포함돼 있었을지도 모른다.
감독의 입장에서는 당장의 승패도 중요하지만, 팀을 지속적으로 강하게 만들 선수의 발굴과 육성도 큰 과제다. 2012년의 '야통' 류중일 감독과 2007년의 '야신' 김성근 감독은 이런 면에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진한 '명장'의 향기가 느껴진다.
대구=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