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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SK 와이번스 경기는 이호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후배들이 낸 아이디어다. 주장 박석민을 비롯해 NC 선수들이 이호준의 마지막 인천 경기라는 것을 생각해내고, SK 선수단과 구단에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고별전 이벤트가 성사됐다.
이호준은 이런 이벤트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비밀에 부쳤기 때문이다. 덕아웃 앞에 후배들과 나갈 때도 SK 정의윤의 1000경기 출전 시상식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형 전광판에 자신의 영상이 나오자 깜짝 놀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마이크를 잡고 팬들에게 짧게나마 인사를 전할 때에는 울컥하는 모습도 보였다. "은퇴가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던 그가 처음으로 유니폼을 벗는 것에 대한 실감을 한 순간이다.
▶오늘(9일) 아침에 일어나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묘했다. SK는 오래 뛰었던 팀이고, 떠난지 5년이 지났는데도 낯설지 않은 곳이다. 후배들이 반겨주기도 하고. 여전히 친근하게 느껴지는 팀이다.
-사실 팬들도 이호준의 마지막 시즌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 분위기다.
▶인지도가 없어서 그렇다(웃음). (같이 은퇴하는)이승엽이 1년만 더 했어도(웃음). 나보다 나이도 1살이 어린데, 1년 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도 아직 은퇴 실감을 못하겠다. 하나도 안슬프다. 방망이를 놓아야 실감이 날 것 같다. 지금은 팀 성적에만 신경이 쓰이고, 내가 민폐를 안끼쳐야겠다는 생각만 집중한다.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이별을 준비하고 있나.
▶이별까지는 아니다. 야구쟁이가 계속 야구판에 있어야 사는 것 아닌가. 은퇴 선언을 했을때 이미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지금은 아무 생각도 안든다.
-이승엽을 비롯해서 올해가 마지막인 다른 선수들과 은퇴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나.
▶그냥 서로 위로한다. "너는 1년 정도 더 해라"는 이야기를 웃자고 하는 정도다.
-말한대로 팀이 중요한 시기다.
▶후배들이 팬들에게 약속했고, 나도 약속했다. 우승하고 떠나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후배들에게 "얘들아, 형 멋지게 떠나게 해주라. 마운드에서 행가레 한번 하게 해주라"고 하는데, 정말 마음 속에서는 늘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렇게 은퇴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아서다.
-SK 시절 우승을 경험해봤으니, 마지막 시즌 NC에서도 하면 완벽할 것 같다.
▶최고다.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완성되는 거다(웃음). 제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올해 기운이 좀 좋다.
-현재 개인 컨디션은 어떤가.
▶나는 컨디션이라는 게 없는 사람이다. 마냥 이기고만 싶다. 못하면 내 머리카락을 스스로 뽑아버리고 싶은 심경이다. (박)용택이가 방송에 나와서 내가 "고참은 감기도 걸리면 안된다"고 했다는데,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는지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웃음). 일단은 팀 순위를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생각만 한다. 두산이 쫓아오는데, 잘 됐다. 쫓아와야 도망가고, 긴장감도 생기고, 팬들도 재미있어 한다.
-은퇴한 선수들은 하나같이 "선수 시절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많이 들었다. 경제적인 이야기도 많이 하고, 뭘 하던지 선수때가 가장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아까 양준혁 선배와도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도 느껴봐야 알 것 같다. 지금 같아서는 은퇴하면 1년간은 아무것도 안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선배들이 "더 치열해질껄?"이라며 엄포를 놨다.
-은퇴 후 방향은 정했나.
▶아직 못정했다. 방송일지, 현장에 계속 있을지. 정확하게 50대 50이다. 조언해주는 사람들도 50대 50이다. 지금은 생각 안하려고 한다. 시즌 끝나고 최종 결정을 해야겠다. 고민 중이다.
-마지막 경기를 어떻게 그리나.
▶정말 실감이 안난다 아직은. 내 마지막 경기에 아버지와 아내는 오지 않겠다고 이미 선언했다. 아버지는 정말 진심이시다. 많이 울 것 같아서 정말 안오시겠다고 하더라. (이)병규형도 은퇴식에서 많이 우는 것을 보면, 나도 막상 그 자리에 서서 지나간 일들을 회상할때 눈물이 날 것 같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