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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야구대표팀 감독(55)은 프로팀 감독 시절에 한 박자 빠른 투수교체로 정평이 난 지도자다. 경기 흐름과 투수 상태를 정확히 읽고, 남보다 빠른 타이밍에 교체 카드를 꺼내 찬사를 받았다. 투수교체 타이밍을 잡는 데 그보다 뛰어난 지도자는 드물었다.
선 감독이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값진 성과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숙였다. 4일 서울 도곡동 회관에서 진행된 선 감독의 기자회견을 보는 내내 '한 달만 빨리 이런 자리를 마련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던 이유다. 사과나 해명의 적절한 '타이밍'을 놓친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 일로 확대될 수 있는 지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데에는 1차적으로 선 감독의 무딘 현실 인식을 들 수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선 감독은 "그간의 지나친 신중함이 오히려 많은 의문을 낳은 것 같다. 국민과 야구를 사랑하는 여러분,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병역 특례에 대한 시대적 비판에 둔감했다"면서 "지금 생각해보니 좀 더 빨리 이 자리에 나왔어야 하지 않나 싶다. 국민 여론, 청년들의 여론까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제야 비로소 둔감했던 현실 감각을 인정한 것이다.
좋은 기회는 많았다. 한 달 전인 지난 9월 3일. 선 감독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고 귀국했다. 정운찬 KBO 총재가 공항에 나와 선 감독과 대표팀 선수들에게 화환을 건넸던 날이다. 국민의 의혹에 답하기에 이날 만큼 좋은 기회는 없었다. 선 감독이 공항에서 "선발 과정에서의 비리는 없었다. 하지만 국민 정서를 감안하지 못한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만 했더라도, 이렇게까지 사태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KBO나 선 감독 모두 이 기회를 외면했다.
차후에도 기회는 많았다. 지난 9월 12일 정 총재가 야구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대국민사과를 발표할 때도 이런 이야기가 나왔었다. 이 자리에 선 감독이 함께 나와 대표팀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도 고려해볼 만 했다. 하지만 정 총재 홀로 나와 원론적이고, 현실적이지 못한 계획만 발표해 아쉬움을 남겼다.
KBO가 수수방관하는 사이 '의혹'은 '의심'과 '불신'으로 나갔고, 여기에 여론을 의식한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가 개입하며 사태가 엉뚱한 방향으로 변질됐다. 결국 한국야구는 아시안게임 2연패에도 불구하고 큰 상처를 받고 말았다. 선 감독이 뒤늦게 국민 앞에 사과했지만, 여론을 완전히 납득시킬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타이밍이 너무 늦은 탓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