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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척돔 1루 매표소 앞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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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승씨는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직원,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 오케스트라의 트럼본 주자다. 선천적 시각장애인인 그는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간 인천 도원구장에서 '야구장 소리'를 처음 들었다. 문학경기장이 들어선 이후 '찐' 야구팬이 됐다. 선두 SSG의 열혈팬이라는 그는 '두산팬' 직장동료 오유리씨(28)와 랜더스파크, 잠실구장에서 수도권 직관을 즐겨왔다. 이날은 "승점 차가 더 벌어지게 삼성이 2위 키움을 잡아주길 바란다"고 했다. 서울시시각장애인연합회 동대문지회장인 상민씨는 17년차 원조 삼성팬. 2014년 시각장애인이 된 후엔 야구장 나들이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삼성의 연패 탈출을 염원하며 이날 처음 직장동료 '키움 팬' 이소라씨(27)와 고척돔을 찾았다.
신명나는 응원 속, 경기가 시작되자 이내 표정이 환해졌다. '야구장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경기를 즐겼다. 최 정 유니폼을 내걸은 '직관 달인' 희승씨는 타구 소리, 함성만 듣고도 플라이, 안타, 아웃 카운트 상황을 파악했다. KBO앱 음성지원을 통해 SSG 등 타구장 상황을 수시로 확인했다. 상민씨도 "구자욱 홈런!"을 외치며 경기에 몰입했다. 문제는 돌발상황. 7회 허삼영 삼성 감독이 보크를 항의하다 '4분 시간초과'로 퇴장 당한 장면, 보지 않곤 상황을 인지할 수 없었다. 유리씨, 소라씨가 상황을 설명했다. 예전엔 라디오 중계의 도움을 받았지만, 최근 라디오가 모바일앱으로 대체됐다. '시간 지연' 문제가 발생한다. 상민씨는 "'딜레이' 중계로 인해 관중들이 함성을 지른 후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다. 같은 공간에서도 실시간으로 상황을 즐기기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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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스포츠관람권'을 앞장서 입법중인 김예지 의원도 이날 처음으로 야구장을 찾았다. 여름밤 직관의 묘미, '치콜(치킨과 콜라)'을 난생 처음 즐겼다는 김 의원은 "피크닉 온 것같다. 댄스타임에 전광판에 춤추는 관중도 보여주고, 선물도 주신다는데, 정말 축제같다"며 활짝 웃었다. "이건 단순한 경기 관람이 아니다. 선수들과 혼연일체가 돼 응원하고 참여하면서 '삶의 질'이 향상된다"고 했다. "직접 와보니 '아, 이분들이 이걸 원했구나'를 알겠다. '장애인 스포츠 관람권 3법'을 꼭 통과시켜야겠다는 의지가 솟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의원은 장애당사자 눈높이의 제언도 잊지 않았다. "경기장 점자 안내보다 직접 안내 지원이 실효성 있다. 시각장애인 입장에선 점자가 어디 있는지 찾기조차 힘들다"고 했다. "'예술의전당'의 경우, 전화를 하면 담당직원이 나와 좌석까지 안내한다. LA다저스도 장애인 동반 1인에 대해 무료관람 혜택을 준다. 구장별 시각장애인 음성중계 서비스도 필요하다. 많은 시각장애인이 스포츠 중계 서비스에서 배제되고 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이날 김 의원을 찾아온 허구연 KBO 총재는 '장애인 스포츠관람권' 법안에 대해 공감과 지지를 표했다. "야구는 일주일에 6일 동안 경기를 하는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다. 장애인 팬들도 많다. 이분들을 위해 지금처럼 해선 안된다"며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프로 스포츠 대부분이 적자다. 정부 차원에서 장애인을 위한 중계, 수신 시스템을 만들어준다면 KBO는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다"는 뜻을 전했다. 허 총재는 "김 의원님과 스포츠관람권 강화, 프로 스포츠 규제 철폐, 학교체육 강화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경기단체, 지자체, 정부가 협업해 매주 하루를 '장애인의 날'로 정하고 할인 및 현장 중계, 관람 편의를 제공하는 방법도 제안했다"고도 했다. 시각장애인 티켓 예매 문제에 대해서도 허 총재는 해결책을 모색중이라고 했다. "구단별 현황을 다 파악했다. 콜센터 예매, 대체 텍스트 제공 확대 등 대안을 이미 마련중"이라고 답했다.
한편 이날 경기는 연장 혈투끝에 2대3, 삼성의 패배로 끝났다. 9회초 강민호의 2루타로 삼성이 2-1로 역전하자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던 상민씨는 12연패에 "'급'피곤해진다"더니 이내 "내일은 이길 거예요"라며 긍정 에너지를 전했다. 희승씨는 "우리에겐 야구장 오는 것 자체가 힐링"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할 말을 또렷히 했다. "김예지 의원님이 국회에서 시각장애인을 대표해서 '스포츠 관람권' 법안을 발의해주셨다. 장애인들이 야구도, 문화도, 예술도 장벽없이 즐길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이 법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 불만만 갖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고척돔=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